논어 323

논어 (論語) - 태사공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 #5

景公問政孔子, 孔子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경공문정공자 공자왈 군군 신신 부부 자자 경공이 공자에게 정사에 관해 물었다. 공자가 '임금이 임금답고,신하가 신하답고,아버지가 아버지답고,자식이 자식다워야 한다.' 말하자 景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豈得而食諸! 경공왈 선재 신여군부군 신불신 부불부 자불자 수유속 오기득이식제 경공이 말하여 '참으로 좋은 말씀이로고.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식량이 있은들 내 어찌 먹을 수 있으랴!'고 하였다. 他日又復問政於孔子, 孔子曰, 政在節財. 景公說. 將欲以尼谿田封孔子. 타일우부문정어공자 공자왈 정재절재 경공설 장욕이니계전봉공자 다른 날 경공이 다시..

논어 2022.04.16

논어 (論語) - 태사공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 #4

是時也, 晉平公淫, 六卿擅權, 東伐諸侯. 시시야 진평공음 육경천권 동벌제후 이 때 진평공이 음란하여 육경이 정권을 전횡하고 동쪽으로 제후들을 정벌하였다. 楚靈王兵彊, 陵轢中國. 齊大而近於魯. 초영왕병강 능력중국 제대이근어노 초영왕은 강한 군사력으로 중원의 제후국을 넘보고 있었다. 제나라는 강한 제후국으로 노나라와 근접해 있었다. 魯小弱, 附於楚則晉怒. 附於晉則楚來伐. 노소약 부어초즉진노 부어진즉초내벌 노나라는 약소 제후국으로 초나라에 붙으면 진나라가 성을 내고,진나라에 붙으면 초나라가 정벌하려 하였다. 不備於齊, 齊師侵魯. 부비어제 제사침노 노나라가 제나라에 대비할 수 없게 되자 제나라가 군사를 내어 노나라를 침략하였다. 魯昭公之二十年, 而孔子蓋年三十矣. 齊景公與晏嬰來適魯, 노소공지이십년 이공자개년삼십의..

논어 2022.04.15

논어 (論語) - 태사공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 #3

孔子年十七, 魯大夫孟釐子病且死. 誡其嗣懿子曰, 공자년십칠 노대부맹리자병차사 계기사의자왈 공자가 열일곱 살이 되었다. 노나라 대부 맹리자가 병이 나서 죽게 되자 그의 뒤를 이을 맹의자에게 이르기를 孔丘, 聖人之後. 滅於宋. 其祖弗父何始有宋而嗣讓厲公. 及正考父佐戴, 武, 宣公. 공구 성인지후 멸어송 기조불부하시유송이사양여공 급정고부좌대 무 선공 '공구는 성인의 후예로 송나라에서 망한 불부하가 그의 조상이다. 불부하가 송양공의 후사를 여공에게 사양하였다. 마침내 정고부에 이르러 대공을 보좌하였고,선공과 무공을 섬겼다. 三命茲益恭, 故鼎銘云, 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삼명자익공 고정명운 일명이루 재명이구 삼명이부 정고부는 상경으로서 세번 령을 받았는데 공손하였으니 이를 솥에 새겼다. 처음에는 숙이고,두번..

논어 2022.04.14

논어 (論語) - 태사공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 #2

索隱孔子非有諸侯之位, 而亦稱系家者, 以是聖人為教化之主, 又代有賢哲, 故稱系家焉. 색은공자비유제후지위 이역칭계가자 이시성인위교화지주 우대유현철 고칭계가언 색은에 따르면 공자는 제후의 지위가 아니었다. 세가로 부르는 것은 공자가 성인으로서 교화를 한 종주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진 철리가 대대로 이어지니 세가라고 이르는 것이다. 正義孔子無侯伯之位. 而稱世家者. 太史公以孔子布衣傳十餘世. 學者宗之. 정의공자무후백지위 이칭세가자 태사공이공자포의전십여세 학자종지 정의에서는 공자가 후백의 지위는 아니지만, 세가로 칭하는 것은, 공자는 포의였으나 태사공까지 십여 세를 학자들의 종사로 전해왔고, 自天子王侯. 中國言六藝者宗於夫子. 可謂至聖. 故為世家. 자천자왕후 중국언육예자종어부자 가위지성 고위세가 천자 왕후에서 부터 중국..

논어 2022.04.13

논어 (論語) - 태사공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 #1

태사공 사마천의 사기 태사공 사마천은 한무제 때의 인물이다. 궁형을 당해 불우한 삶을 살면서 시대의 역사서인 태사공서(太史公書)를 완성하였다. 후에 그의 저술은 사기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게 되었고, 동양 고대의 역사는 거의 그가 쓴 역사의 기록에 의해 해석되고 있다. 태사공 자서(自書)는 사마천 자신에 관한 내용을 쓴 것으로 사기열전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여기에 보면 사마천의 선계는 주왕실의 사관으로서 복무하였고, 초한 쟁패시에 활약한 은왕 사마앙이 또한 방계의 혈족이라고 밝히고 있다. 춘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사관의 맹맥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던 사마천의 선대는 아버지인 사마담이 한나라의 태사령(太史令)이 되면서 역사의 기록을 다시 담당하게 되었다. 열 살이 되었을 때부터 사마천은 많은 역사의 기..

논어 2022.04.12

논어 (論語) - 주희(朱熹)의 논어집주(論語集註) 서설(序說), #4

何氏曰, 魯論語二十篇. 齊論語別有問王 知道, 凡二十二篇, 其二十篇中章句, 頗多於魯論. 하씨왈 노논어이십편 제논어별유문왕 지도 범이십이편 기이십편중장구 파다어노론 하안이 말하길, 노논어는 20편이고, 제논어는 문왕과 지도 두 편이 더 있어 모두 22편이며, 그 20편의 장구도 노논어 보다 상당히 많다. 古論出孔氏壁中, 分堯曰下章子張問以爲一篇, 有兩子張, 凡二十一篇, 篇次不與齊魯論同. 고논출공씨벽중 분요왈하장자장문이위일편 유양자장 범이십일편 편차부여제노논동 고논어는 공안국의 집 벽 속에서 나왔는데 요왈편 아랫 장의 자장문을 나누어 한 편을 만들어서 두 자장편이 있으니, 모두 21편이며 편의 차례도 제논어나 노논어와는 다르다. 程子曰, 論語之書, 成於有子曾子之門人, 故其書獨二子以子稱. 정자왈 논어지서 성어유자..

논어 2022.04.10

논어 (論語) - 주희(朱熹)의 논어집주(論語集註) 서설(序說), #3

而冉求爲季氏將, 與齊戰有功, 康子乃召孔子, 而孔子歸魯, 實哀公之十一年丁巳, 而孔子年六十八矣. 이염구위계씨장 여제전유공 강자내소공자 이공자귀노 지애공지십이년정사 이공자년육십팔의 염구가 계씨의 장수가 되어 제나라와 싸워 전공을 세우자, 계강자가 공자를 불러 들이자 노나라로 돌아오시니, 애공 11년(BC 484년) 정사년, 공자 나이 68세였다. 然魯終不能用孔子, 孔子亦不求仕, 乃敍書傳禮記. 연노종불능용공자 공자역불구사 내서서전예기 그러나 노나라에서는 끝내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고, 공자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마침내 서전과 예기를 정리하였다. (註) 刪(산): 죽간을 칼로 파내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 刪詩正樂, (有語大師及樂正之語) 序易彖繫象說卦文言. 산시정악 유어대사급악정지어 서역시계상설괘문언 시를 산정..

논어 2022.04.09

논어 (論語) - 주희(朱熹)의 논어집주(論語集註) 서설(序說), #2

晉趙氏家臣佛肹以中牟畔, 召孔子, 孔子欲往, 亦不果. 진조씨가신불힐이중모반 소공자 공자욕왕 역불과 진나라 조씨의 가신인 불힐이 중모에서 반란을 일으켜 공자를 초빙하자 공자가 가려고 하였지만 가지 않았다. 將西見趙簡子, 至河而反, 又主蘧伯玉家. 장서견조간자 지하이반 우주거백옥가 장차 서쪽으로 가서 조간자를 보고자 했지만 황하까지 갔다가 돌아와 다시 거백옥의 집에 머물렀다. 靈公問陳, 不對而行, 復如陳. 영공문진 불대이행 부여진 위영공이 진치는 법을 묻자 대답을 하지 않고 진나라로 떠났다. 季桓子卒, 遺言謂康子必召孔子, 其臣止之, 康子乃召冉求. 계환자졸 유언위강자필소공자 기신지지 강자내소염구 계환자가 죽고 계강자에게 공자를 반드시 모셔올 것을 유언하였지만 그의 신료들이 저지하여 계강자는 마침내 염구를 초빙하였..

논어 2022.04.08

논어 (論語) - 주희(朱熹)의 논어집주(論語集註) 서설(序說), #1

주희의 논어집주 서설 史記世家曰, 孔子名丘, 字仲尼. 其先宋人. 사기세가왈 공자명구 자중니 기성송인 사기 세가에 이르기를 공자의 이름은 구, 자는 중니이며 그의 선조는 송나라 사람이다. 父叔梁紇, 母顔氏. 以魯襄公二十二年, 庚戌之歲, 十一月庚子, 生孔子於魯昌平鄕陬邑. 부숙량흘 모안씨 이​노양공이십이년 경술지세 십일월경자 생공자어노창평향추읍 아버지는 숙량흘이며 어머니는 안씨이다. 노양공 22년 경술년 십일월 경자일에 공자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하였다. 爲兒嬉戱, 常陳俎豆, 設禮容. 위아희희 상진조두 설예용 어릴 적에는 항상 제기를 늘어놓고 예를 행하며 놀기를 좋아하였다. 及長, 爲委吏, 料量平 (委吏, 本作季氏史. 索隱云, 一本作委吏, 與孟子合. 今從之.) 급장 위위리 요량평 위리 복작계씨사 색은운..

논어 2022.04.07

논어 (論語) - 논어(論語)와 공자(孔子)에 대한 일반적 이해 #2

공자가 어떻게 유가의 비조가 되었는가? 공자는 세계 사대 성인(聖人)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리고 공자의 유교(儒敎)가 종교냐 유학(儒學)이냐에 대한 논쟁도 아직 진행형이다. 명확한 사실은 공자가 유학의 비조(鼻祖)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동양의 제례와 예의문화가 유가의 사상과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공자에 대한 견해는 시대와 부류에 따라 다르다. 숭공(崇孔)과 비공(批孔), 심지어 반공(反孔)과 멸공(滅孔)까지 다양하다. 공자는 춘추시대 인물이니 지금부터 약 이천오백 년전의 교육가이며 정치사상가로 얘기할 수 있다. 현실정치에 뜻을 가진 공자를 정치가로 말하지 않은 것은 관중이나 안영처럼 국가경영을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자가 지극한 숭상과..

논어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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