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주희(朱熹)의 논어집주(論語集註) 서설(序說), #2

몽그림 2022. 4. 8. 01:00

晉趙氏家臣佛肹以中牟畔, 召孔子, 孔子欲往, 亦不果.

진조씨가신불힐이중모반    소공자   공자욕왕   역불과  

진나라 조씨의 가신인 불힐이 중모에서 반란을 일으켜 공자를 초빙하자 공자가 가려고 하였지만 가지 않았다.

 

將西見趙簡子, 至河而反, 又主蘧伯玉家. 

장서견조간자   지하이반    우주거백옥가

장차 서쪽으로 가서 조간자를 보고자 했지만 황하까지 갔다가 돌아와 다시 거백옥의 집에 머물렀다.

 

靈公問陳, 不對而行, 復如陳. 

영공문진    불대이행   부여진

위영공이 진치는 법을 묻자 대답을 하지 않고 진나라로 떠났다.

 

季桓子卒, 遺言謂康子必召孔子, 其臣止之, 康子乃召冉求.

계환자졸   유언위강자필소공자    기신지지   강자내소염구

계환자가 죽고 계강자에게 공자를 반드시 모셔올 것을 유언하였지만 그의 신료들이 저지하여 계강자는 마침내 염구를 초빙하였다. 

 

(史記以論語歸與之歎爲在此時, 又以孟子所記歎辭爲主司城貞子時語,  疑不然.

  사기이논어귀여지탄위재차시     우이맹자소기탄사위주사성정자시어      의불연

(사기에서는 논어에 돌아가자는 탄식이 이 때라고 하였고 맹자는 사성성자의 집에 있을 때라고 하였지만 옳지 않은 것 같다.

 

蓋語孟所記, 本皆此一時語, 而所記有異同耳.)

합어맹소기    본개차일시어   이소기유이동이

논어와 맹자에서 한 말은 모두 같은 때 한 말인데 기록이 상이할 뿐이다.) 

孔子如蔡及葉. (有葉公問答子路不對 沮溺耦耕 荷蓧丈人等事. 

공자여채급섭   유섭공문답자로부대 저익우경 하조장인등사
공자는 채나라로 가 섭 땅에 이르렀다. (섭공이 자로에게 묻고 자로가 대답을 못한 것과 장저와 걸익이  밭을 갈고 있는데 자로를 시켜 나루를 묻게 하고 지팡이로 대그릇을 맨 장인의 일이 있었다. 

 

史記云, 於是楚昭王使人聘孔子, 孔子將往拜禮, 而陳蔡大夫發徒圍之,

사기운   어시초소왕사인빙공자     공자장왕배례   이진채대부발도위지

사기에는 이 때 초소왕이 사신을 보내 공자를 초빙하여 공자가 찾아가 절하며 예를 행하려 하였지만 진나라와 채나라 대부가 군대로 포위하였다. 

 

故孔子絶糧於陳蔡之間.  有慍見及告子貢一貫之語.

고공자절양어진채지간      유온견급고자공일관지어

그리하여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양식이 떨어졌다. 자로가 성난 얼굴로 공자를 뵈었고 자공에게 일이관지를 고해준 말이 있다. 

 

按是時陳蔡臣服於楚, 若楚王來聘孔子, 陳蔡大夫安敢圍之.

인시시진채신복어초  약초왕래빙공자  진채대부안감위지

생각해보면 진나라와 채나라가 초나라에 복종하고 있었는데 만약 초나라에서 공자를 초빙하였다면 진, 채의 대부들이 감히 공자를 포위하였겠는가?

 

且據論語, 絶糧當在去衛如陳之時.)

차거논어   절양당재거위여진지시

논어에 근거하면 양식이 떨어진 것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갈 때의 일일 것이다.)

 

楚昭王將以書社地封孔子, 令尹子西不可, 乃止. (史記云, 書社地七百里 , 恐無此理, 時則有接輿之歌.) 

초소왕장이서사지봉공자    영윤자서불가    내지    사기운   서사지칠백리    공무차이   시즉유접여지가

초나라 소왕이 장차 서사의 땅에 봉하려 하자 영윤 자서가 불가하다 하여 이에 그치고 말았다. (사기에 서사의 땅이 칠백리 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이치가 없을 듯 하다. 이 때 초나라 광인 접여가 공자 수레를 지나가며 노래한 일이 있다.) 
(註) 초영윤 자서는 초평왕의 서자로 소왕을 옹립하고 소왕 말기와 혜왕초까지 영윤을 지냈다.


又反乎衛, 時靈公已卒, 衛君輒  欲得孔子爲政.
우반호위   시영공이졸   위군첩   욕득공자위정
공자께서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니, 이때 위영공이 죽고 위나라 군주인 첩이 공자를 얻어 정치를 하고자 하였다.

 

有魯衛兄弟及答子貢夷齊 子路正名之語.

유노위형제급답자공이제    자로정명지어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간 이라는 말과 자공에게 백이, 숙제의 일을 대답하고, 자로에게 명분을 바로 잡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註) 초영윤 자서는 초평왕의 서자로 소왕을 옹립하고 소왕 말기와 혜왕초까지 영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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