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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30

저자의 서점에서 탐독을 하니, 글을 주머니와 상자에 담아두는 듯 하다. (註) 후한의 왕충은 논형(論衡)을 지은 대학자였다. 집안이 가난하고 말단관리였던 그는 책을 살 수 없어 저자의 서점에서 책을 읽었으나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후일 후한시대의 대학자가 되었다. 매사를 쉽고 가벼이 하는 것을 두려워 하라, 담장에도 귀가 있으니. (註) 시경 소반(小弁)에 나오는 군자무이유언(君子無易由言) 이속우원(耳屬于垣)에서 나온 말이다. "군자는 말을 쉽게 함부로 하지 않으니 담에도 사람의 귀가 있다." 라는 고사는 주유왕에 대한 것이다. 주나라 12대 유왕이 애첩 포사의 아들 백복을 태자로 삼고자 하여 왕후인 신후를 감금하고 태자인 의구를 죽이려 하자 의구는 외가인 신나라로 몸을 피했다. 신나라 제후는 융족과 연합하..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9

묵은 뿌리는 말라 시들고, 낙엽은 바람에 흩날리고 떨어져 뒹군다. (註) 진근은 묵은 뿌리를 말하고 위예는 말라 시든다는 뜻이다. 낙엽은 단풍이 들어 떨어진 나뭇잎이고 표요는 바람에 흩날려 딍구는 것을 말한다. 예기에 이르기를 칠십이 되면 관직에 있더라도 벼슬을 사양하는 나이라고 하였다. 예기에는 이십 살이 되면 관례를 하고 삼십 살이 되면 처를 얻고, 사십 살에는 벼슬에 나아가고 오십 살이 되면 나라를 경영하고 육십 살이면 사람을 부리고 칠십 살이면 모든 집안가사를 자식에게 넘겨준다 라고 하였다. 과거 인간의 수명이 짧았던 시대의 얘기이긴 하지만 물러설 때를 정확히 가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생은 우리가 막연히 바라볼 때는 길지만 실제로는 찰나와 같이 짧은 것이니 잠시도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곤어..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8

옛 것을 구하고 찾아 논하고 ,근심을 흩어버리고 한가로이 지낸다. (註). 공자는 옛 것을 구하고 찾아 시경과 역경,춘추를 만들고 제자들과 토론하고 사색하였다. 이는 공자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실현하고자 철환주유를 하였으나 실패하고 후학양성에 힘썼음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옛날의 문물제도를 연구하여 자신의 학문으로 만든 것이다. 기쁨은 알리고 걱정은 내보내면,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온다. 개천의 연꽃도 향기가 뚜렷하고, 동산의 풀은 가지가 뻗어 우거졌다. 비파나무는 늦게까지 푸르고, 오동나무 잎은 일찍 시든다.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7

한나라 소광과 소수는 기회를 보아 왕에게 상소하고 물러나니, 관의 끈을 풀고 사직하여 낙향하니 누구에게나 핍박을 받지 않았다. (註) 소광과 소수는 한나라 선제 때 태자의 스승으로 있었으나 당시 권신인 곽광에게 아첨하지 아니하고 벼슬을 치사하여 초야에 묻혔다. 곽광은 자신이 죽은 후 한나라 선제에 의해 일문이 멸문하였다. 무릇 직위에 나아가는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서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 물러나 한가한 곳을 찾아 사니,잠긴 듯 침묵하고 고요하도다. (註) 옛날 동이족의 나라인 고죽국의 제후의 아들인 백이와 숙제는 제후를 계승하여 위에 오르는 것을 서로 사양하고 주나라 문왕이 현사를 초빙하자 찾아가 섬기려 하였다. 그러나 주문왕의 아들인 주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고 군사를 출정하자 이를 불의한 ..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6

후대에 본받을 교훈을 주니, 그것을 공경하고 심도록 힘쓰라. (註) 가유는 후대에 전할 만한 교훈이 될 계책이라는 뜻이다. 몸을 살펴 자신을 꾸짖으며 경계하고, 총애가 더하면 그 끝을 경계한다. (註) 춘추 오패인 초장왕은 현인 손숙오를 영윤으로 등용하여 패권을 이루었다. 손숙오는 영윤에 세번 올라도 기뻐하지 않았고 유훈으로 봉지를 받을때는 구릉의 험지를 받도록 자손에게 가르쳐 뒷일을 경계하였다. 위태함과 욕됨은 치욕에 가까우니, 숲 속 언덕으로 나아가라. (註) 임고행즉은 장자의 말로 부귀영화와 권력은 항상 욕되는 것과 가까이 있으니 부질없는 욕망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라는 것을 말한다. 임고는 수풀이 우거진 한적한 언덕이나 숲을 말한다.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에 순응한..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5

맹가는 소양이 두터웠고, 사어는 올곧음을 지켰다. (註) 맹가는 맹자의 이름이다. 맹자는 모친의 교육으로 성품이 두텁고 유순하였으며 추나라 출생이다. 사어는 공자시대 위나라 대부로 죽음을 맞아 주군인 위영공에게 보필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였는데 영공이 이 말을 듣고 장례를 치러주고 그의 말을 사후에 채택하였다. 중용에 가까이 이르려면, 부지런히 일하며 겸손하고 삼가하고 경계해야 한다. (註)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과하거나 모자람이 없는 변하지 않는 평상의 기준이나 이치를 말한다. 사서인 ‘중용’의 저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이다. 소리를 듣고 이치를 살피며 모양을 보고 기색을 분별한다. (註) 사마천의 얘기이다. 사관은 봉선제례와 예,악을 주관하던 자리였는데 군주와 신하,백성들의 소리와 기색을 보고..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4

정치는 농사가 근본이니 심고 가두는데 힘써야 한다. (註) 농경사회에서는 농자천하지 대본이라 하여 농사를 가장 중요한 국가경제로 생각하였고 이에 따른 제례의식이 많았다. 비로서 남쪽 이랑에서 일을 시작하여 기장과 피를 심었네. (註) 시경에 나오는 농요의 구절이다. 익은 곡식에 세금을 매기고 햇곡으로 공물을 바치며, 권장하고 상을 주고 물리치기도 하고 올려주기도 한다. (註) 맹자의 정치철학을 나타낸 말이다. 맹자는 하, 은, 주의 토지제도와 세금제도를 비교하고 세율이 아니라 수확량의 비율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를 공유제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고려 말 정도전, 김희선등 유학자들은 맹자의 사상을 기준으로 삼아 토지제도와 세제를 개혁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조선왕조의 역성혁명을 완성하였다. 이런 개혁의..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3

아홉 주는 우임금의 행적이고, 여러 군을 진나라가 병합하였다. (註) 중국의 아홉 주는 예주, 기주, 연주, 청주, 서주, 양주, 형주, 옹주, 유주를 말한다. 황제가 처음 아홉 주로 나눈 것을 순임금이 12주로 나누었고, 치수에 성공한 우임금이 다시 아홉 주로 나눈 것을 얘기한 것이다. 진시황은 9주 제도를 폐하고 36군으로 나누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렸다. 오악의 으뜸은 항산과 대산이고, 봉선제례는 임금이 운운산과 정정산에 올라 지냈다. (註) 오악은 동태산, 서화산, 남형산, 북항산, 중숭산의 다섯산을 말한다. 대산은 태산 즉, 동태산이고 항산은 북항산을 말한다. 천자가 올리는 제사를 봉선(封禪)이라고 하는데, 천명을 받아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봉(封)이라 하고, 그 다음..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2

(註) 한(漢)나라 개국공신이 된 소하는 유방이 진의 수도 함양을 함락시키자 약법 삼장을 발표하여 백성들이 가혹한 형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한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반면 한비자는 한(韓)나라 출신으로 엄중하고 가혹한 형벌을 만들어 법치를 주장하여 진시황에 의해 채택되었으나 가혹한 형벌제도로 인해 자신도 죽고 진나라도 백성들의 인심을 잃었다. (註) 백기와 왕전은 진나라릐 이름난 명장이며 염파와 이목은 조나라 장수로 명장이었고 용병술이 뛰어난 장수들이었다. (註) 한무제때의 장수인 곽거병과 소무,장건등이 서역을 토벌할 때 사막을 가로질러 승전한 것을 선위사막이라 한다. 단청은 궁궐의 기린각에 공신의 얼굴을 그려놓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천자문 주해(千字文 註解) - #21

(註) 진문공(晉文公)과 초장왕(楚莊王)은 춘추 오패로 패권을 잡았다. 晉이 망한 뒤 전국 칠웅(韓,魏,趙,楚,燕,齊,秦)이 다툴 때 秦나라를 묶기 위해 한,위,조,초,연,제나라가 연횡으로 단결하여 진나라를 막았는데 이를 연횡책이라 한다. 이에 대항하여 진나라는 각 제후국을 설득하여 이 연횡책을 깨뜨리자 진나라의 인접국인 조와 위나라가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을 말한다. (註) 진헌공(晉獻公)이 우나라에게 거짓으로 길을 빌려달라며 우나라를 앞세워 괵국을 멸한 다음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마저 멸망시켰다.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이 정명가도라고 흉내를 내었다. 삼국지에서도 주유가 서천을 대신 칠테니 유비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한 계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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