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17편 양화 (陽貨): 오장사의 #1

몽그림 2023. 1. 12. 04:50

17 편  양 화 ( 陽 貨 )

배신들의 반란과 공자를 초빙한 전말과 예와 격언등을 수록하였다.

 

 

貨欲見孔子孔子不見.

양화욕견공자    공자불견

양화가 공자를 보고자 하였으나 공자는 만나지 않았다.

 

歸孔子豚,  孔子時其亡也,  拜之,  遇諸塗.

         왕배지   우저도

공자에게 돼지를 보냈으므로 공자는 그가 없는 시간에 그것에 배사를 하려고 가는 도중에 만났다.

 

謂孔子曰,  !  予與爾言.  ,  迷其邦可謂仁乎?

                이미기방   가위인호

공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오셨구려내가 당신에게 말하리다.’하고는 가슴에 보물을 품고 있으나 나라를 혼미하게 둔다면 어질다고 할 수 있으리오?’라고 물었다.

 

,  從事而亟失時,  ?

           지호

공자께서 할 수 없겠지요.’라고 답하자양화는 일하기를 좋아하면서 자주 시기를 놓치면 자혜롭다 할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  .  月逝矣,  歲不我與.

         

공자가 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자, 양화는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오.’라고 하였다.

 

孔子曰,  ,  仕矣.

      장사의

공자께서 예, 나는 장차 벼슬에 나아갈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1) (갈 왕), (절 배), (만날 우), (진흙 도,길 도 ,칠할 도), (품을 회), (보배 보), (미혹할 미),(빠를 극,자주 기), (갈 서), (대답할 ), (돌아올 귀, 보내다)

 

(2) 양화는 계씨의 가신으로 이름은 호이다 (양화, 계씨가신, 명호 陽貨季氏家臣名虎). 계환자를 가두고 국정을 전횡하였다 (상수계환자이전국정 嘗囚季桓子而專國政). 공자가 인사 오기를 바랐으나, 공자께서는 가지 않았다 (욕령공자래견기, 이공자불왕 欲令孔子來見己而孔子不往). 양화는 예법상 대부가 사에게 선물을 했는데 그 집에서 받지 못하면 가서 사례하는 것이므로 (화이례, 대부유사어사, 부득수어기가 貨以禮大夫有賜於士不得受於其家), 공자가 없을 때 돼지를 보냈고 공자가 배사하했던 것이다 (즉왕배기문, 고감공자지망이귀지돈 則往拜其門, 故瞰孔子之亡而歸之豚). 보물을 품고도 나라를 혼미하게 둔다는 것은 도와 덕을 품어 숨기고 으면서 나라의 혼란을 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회보미방, 위회장도덕, 불구국지미란 懷寶迷邦謂懷藏道德不救國之迷亂). 기는 여러번이다 (기, 수야數也). 때를 잃는다는 것은 일할 기회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실시, 위불급사기지회 失時謂不及事幾之會). 장은 자연스레 아직은 아니라는 말이다 (장자, 차연이미필지사 將者, 且然而未必之辭)양화의 말은 모두 공자를 풍자하며 빨리 출사할 것을 빗댄 것이다 (화어개기공자이풍사속사 貨語皆譏孔子而諷使速仕). 물론 공자는 이와 뜻이 같지 않았고, 또한 출사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양화에게 출사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공자고미상여차, 이역비불욕사야, 단불사어화이 孔子固未嘗如此而亦非不欲仕也但不仕於貨耳). 그러므로 다만 이치에 근거하여 답하고 다시 그와 말하지 않으려고 마치 그의 뜻을 모른 체 하였다 (고직거리답지, 부부여변, 약불유기의자 故直據理答之, 不復與辯, 若不諭其意者)양화가 공자를 만나려 한 것은 비록 선의라 해도 자기를 도와 난을 일으키기를 바란 것에 불과하다 (양화지욕견공자, 수기선의, 연불과욕사조기위난이 陽貨之欲見孔子, 雖其善意, 然不過欲使助己爲亂耳). 고로 공자가 만나지 않은 것이 의이며, 가서 배사한 것은 예이다 (고공자불견자, 의야, 기왕배자, 예야 故孔子不見者義也, 其往拜者禮也). 반드시 양화가 없을 때를 틈타 가신 것은 양화가 한 그대로 하려는 것이다 (필시기망이왕자, 욕기칭야 必時其亡而往者欲其稱也). 길에서 만나 피하지 않은 것은 단절하지 않은 것이다 (우제도이불피자, 불종절야 遇諸塗而不避者不終絶也)묻는데 답한 것은 이치에 따라 바르게 한 것이다 (수문이대자, 이지직야 隨問而對者理之直也). 답만 하고 변명하지 않은 것은 말은 공손하지만 또한 굽히지 않는 것이다 (대이불변자, 언지손이역무소굴야 對而不辯者, 言之孫而亦無所詘也).

 

(3) 양화는 계환자의 가신으로 삼환을 제거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였다. 자신이 섬기던 계환자를 구금하여 충성을 맹약하게 한 뒤에 삼환의 세 가문을 제거하고 노나라 정사를 전횡하려고 하였다양화와 공자의 인연은 끈질긴 악연이기도 하다공자가 학문에 뜻을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의 나이 열일곱이 되던 해 어머니 안징재가 죽었다. 이 때 공자는 상주의 몸이지만 계환자가 나라의 선비를 초청한 모임에 참석하러 갔다가 문전에서 양화에게 쫒겨나게 된다. 나라의 선비를 대접하려는 자리이니 물러가라고 한 것이다. 이후 공자보다 연배가 많은 양화는 배신의 위치에서 섬기던 계환자보다 힘이 세어지자 삼환의 가문을 자신의 수하에 두려고 하였다그러나 결국은 구금에서 빠져나온 계환자를 비롯한 삼환가의 반격으로 제나라로 도망치기에 이르고 다시 진나라로 건너가 조간자를 섬기는 가신이 되기에 이른다. 후일 조간자는 공자를 초빙하려 하였다양화와의 악연은 공자가 광읍성에서 광포한 양화로 오인받고 구금되면서 절정에 이른다만약 양화가 삼환의 가문을 평정하여 노나라 공실에 정권을 되돌려 주려 했고 나라를 바로잡으려 했다면 공자는 양화를 배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화에게도 변론의 여지가 있다면 새로운 노나라의 물갈이 정도의 변명은 가능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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