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15편 위영공(衛靈公): 조두지사 즉상문지의 #1

몽그림 2022. 12. 12. 06:33

15 편  衛 靈 公 ( 위 영 공 )

수신과 치세에 관한 구절을 기록했다.

此章記孔子先禮後兵, 去亂就治, 並明忠, 信, 仁, 知, 勸學, 為邦無所毀譽, 必察好惡.

차장기공자선례후병,    거란취치,  병명충, 신,  인, 지, 권학,  위방무소훼예,  필찰호악

 

誌士君子之道, 事君相師之儀, 皆有恥且格之事, 故次前篇也.

지사군자지도,   사군상사지의,   개유치차격지사,  고차전편야

 

 

衛靈公問陳於孔子,

공문진어공자

위령공이 공자에게 진법을 물었다.

 

孔子對曰,  俎豆之事,  則嘗聞之矣.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제례에 관한 일은 일찍이 배운 바가 있지만

 

軍旅之事未之學也明日遂行.

군려지사    미지학야    명일수행

군사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셨다. 그 이튿날 아침에 떠나셨다.

 

(1) (영묘할 ), (베풀 진), (도마 조), (맛볼 상), (드디어 수)

 

(2) 군대의 진의 대오와 행열에 관한 진법을 공자에게 물은 것이다 (문군진행렬지법어공자야 軍陳行列之法於孔子也). 조두는 예기이다 (조두, 예기 俎豆, 禮器). 만이천오백 군사를 군이라 하고 오백인의 군사를 려라고 한다 (만이천오백인위군, 오백인위려 二千五百人為, 百人為). 공자의 뜻은 예의를 근본으로 하는 치국이며 군사의 일은 마지막에 세우는 것인데 마지막의 일을 가르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공자지의, 치국이례의위본, 군려위말, 본미립, 즉불가교이말사 子之, 國以禮義為本, 軍旅為, , 不可教以末).

 

(3) 위령공은 위헌공의 손자로 이름은 희원(姬元)이다. 집권 도중 권신들의 난으로 도망을 갔다가 돌아오는 등 실정이 많았고 진나라에 시달렸다. 위령공은 송나라 출신의 후비인 남자(南子)를 총애하였으나 남자는 자신의 이복오빠인 송조와 사통하는 등 행실이 문란하였다위령공의 태자인 괴외는 남자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송나라로 달아났다후일 이런 일을 계기로 하여 위령공 사후 남자는 괴외의 아들을 위령공의 후사로 정하여 위후에 올리니 위출공이다후일 괴외가 그의 아들이 아버지인 위령공의 후사로 왕위에 오른 것을 축출하기 위해 대부 공회를 겁박하여 무력정변을 일으킬 때 자로가 피살되어 해형에 처해지게 된다위령공은 오랜 재위기간 중 진(晉)나라의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 있었으니 공자에게 무력강국에 대한 기대를 하고 물어봄 직한 일이다그러나 공자는 위나라의 왕실의 명분 바로잡기와 인의구현이 우선이라고 보았으므로 지체 없이 다른 나라로 떠난 것이다오늘날 우리의 정당정치를 보면 국리민복의 뚜렷한 소신보다는 자신의 출세와 권력의 쟁취에만 매달리는 아름답지 못한 소위 배운 사람들의 추태를 보게 된다공자처럼 백성과 소신을 위해 몸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추할 망정 나라의 무력을 증강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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