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15편 위영공(衛靈公):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2

몽그림 2022. 12. 13. 03:23

陳絶從者莫能.

재진절량     종자병   막능흥

진나라에 있을 때 식이 끊어지고 수행하는 사람들은 병이 들었고 능히 일어나지 못했다.

 

路慍見曰,  子亦有窮?

     

자로가 화가 나서 공자를 뵙고 말하길 군자도 역시 곤궁합니까?’라고 물었다.

 

子固窮小人窮斯濫矣.

자왈    군자고궁    소인궁사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본래 곤궁한 것이다. 소인은 곤궁하면 외람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1) (끊을 절), (성낼 온), (넘칠 람)

 

(2) 종자란 제자이고 (종자, 제자 從者, 弟子) 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흥, 기야 , 起也). 공자가 위나라를 떠나 조나라로 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공자거위여조, 조불용 子去衛如, ), 다시 송으로 갔는데 송나라에서 공읍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겪었다 (우지송, 송조광인지난 宋, 遭匡人之難).다시 진나라로 갔지만 오나라가 진을 토벌하는 중이라서 진나라에 난리가 났으므로 식량이 궁핍해진 것이다 (우지진, 회오벌진, 진란, 고핍식 又之陳, 吳伐, 亂, 故乏食). 람(濫) 도를 벗어나 넘치는 것이다 (람, 일야 濫, ). 군자는 자신을 고수하므로 곤궁한 때가 있다 (군자고역유궁시 子固亦有窮). 다만 궁하면 도를 벗어나 잘못하는 소인과 같지 않은 것이다 (단불여소인궁즉람일위비 不如小人窮則濫溢為非). 온은 성내는 것이다 (온, 로야 , 怒也). 자로가 성을 낸 것은 군자는 배웠으므로 록을 받을 수 있거늘 곤궁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자로이위, 군자학, 즉록재기중, 부당유궁곤 路以, , 祿在其, 當有窮).

 

(3) 진채지액(陳蔡之厄) 공자의 주유열국에서 가장 힘든 어려움으로 회자되는 사건이다진나라와 채나라의 국경 지대에서 조난에 해당하는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진채지액이라고 하였다이 때 공자를 수행하는 제자들은 칠일 동안 식량이 끊어져 화식(火食)을 하지 못하고 굶주려 쓰러지고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였다대략 공자의 귀국 오 년전의 일로 추정되는데 이 때 공자는 초소왕의 초빙을 받아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공자가 초소왕에게 등용되어 초나라가 더 강해질 경우 진나라와 채나라에 머물면서 많은 정보와 국내 사정을 알고 있는 공자에 의해 두 나라는 위험해 질 수 있다고 두 나라의 대부들이 생각하였다이에 두 나라의 대부들이 합세하여 공자 일행을 포위하여 곤궁에 빠뜨리고 오도가도 못하는 공자 일행은 식량이 끊어지고 궁핍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그러나 채지액 당시의 제후국간의 상황은 이러한 설명에 의문을 준다당시 제후국 중에는 오나라가 가장 무력으로 우위에 서있는 강국이었다오왕 부차는 초나라의 망명객인 오자서와 백비, 그리고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를 등용하여 배후인 월나라를 쳐서 제압하고 초나라를 침공하여 초의 수도를 함락하였다공자를 초빙한 초소왕은 오자서와 손무를 앞세운 오군에게 수도를 함락당하고 간신히 북방의 진(秦)나라의 도움으로 오나라와 강화를 맺고 나라를 재건 중이었다춘추시대의 제후국은 수백 개에 이르지만 오, 초, 진, 진, 연, 제(吳, 楚, 晉, 秦, 燕, 齊)의 강국과 노, 위, 정, 송, 진 (魯, , , , 陳)등 중간 세력의 제후국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거의가 읍성정도의 소제후국으로 강국의 눈치나 살피며 겨우 명맥만 유지고 있었다중간 세력이나 소제후국은 강력한 제후국과의 우호관계로 유지되고 있었으니 이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의 국제 정세와 결코 다르지 않았다공자를 초빙한 초나라는 비록 오나라에 밀리고는 있었지만 강대국이었고 진나라는 거의 초나라의 위성제후국에 불과하였고 채나라는 오와 초나라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과 채나라 대부들이 합력하여 공자를 공격하거나 포위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여진다위에 소개한 고주의 기록대로 당시 진나라가 오나라의 공격을 받고 초나라가 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보내고 있었으므로 전쟁 중에 조난을 당해 곤란에 빠진 것이 사실일 것이다공자세가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도 명확한 정설은 읽어낼 수 없다. 다만 당시의 춘추시대 제후국간의 전쟁과 이합집산의 기록을 보면 이 고주의 해석이 가장 사실과 부합된다진채지액에서 공자일행을 구출한 사람 역시 초소공이다. 당시 초소공이 군대를 지휘하고 진나라를 구하기 위해 부근에 있었기에 공자는 곤경을 가까스로 면할 수 있었다혹자는 이 때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간 것은 오년이나 지난 후 제자인 염구의 주선으로 계강자가 초빙하면서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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