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자왈 인지과야 각어기당 관과 사지인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잘못을 하는 것은 각기 그 무리에 따른 것이다. 잘못한 것을 관찰해보면 이것으로 그 사람의 인을 알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
(註1) 黨(무리 당), 觀(볼 관)
(註2) 당(黨)은 같은 무리들이고 (당류야 黨類也), 사람의 과실은 군자와 소인의 각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인지위과야, 군자소인각어기류야 人之為過也, 君子小人各於其類也). 간과, 사지인의(觀過, 斯知仁矣)는 사람의 과실은 각 그 소속된 무리의 현우에 따른 것이고 (사현우각당기소 使賢愚各當其所), 소인은 군자의 실행을 할 수 없지만 (약소인불능위군자지행 若小人不能為君子之行) 소인의 과실이 아니라면 용서하고 책망하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인한 마음을 쓰는 것이다 (비소인지과, 당서이물책지, 사지인자지용심의 非小人之過, 當恕而勿責之, 斯知仁者之用心矣).
(註3) 사람은 보통 같은 류들끼리 무리를 짓는다. 군자는 군자들끼리 모이고 소인은 소인들끼리 모이게 된다. 공자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인을 실행하는 호인자(好仁者)들끼리 모이는 것이 좋겠지만 어디 세상이 군자들만의 모임을 허락할 리가 있을까? 그러나 소인들끼리 모이거나 어울려서 아무리 인을 외친들 그것이 과연 실행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수련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의 무리에 물들 수 밖에 없다. 사람이 또한 인을 실행하려 하지만 아무리 군자라 한들 과실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소인의 과실이 아니라면, 즉 남을 돕다가 일어난 실수라든가 사회적인 공익을 위해 일하다가 발생한 과실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 또한 인(仁)이니까 말이다.
子曰, 朝聞道 夕死 可矣
자왈 조문도 석사 가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고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셨다.
(註1) 聞(들을 문,듣다,깨우치다,소문나다,아뢰다)
(註2) 세상에 도가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고 죽음을 맞겠구나라고 한탄하였다는 해석이 있는 반면 (언장지사불문세지유도 言將至死不聞世之有道),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지 않으니 아침에 세상에 도가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은들 무슨 한이 있으리오 라고도 해석한다 (질세무도야 설약조조문세유도, 모석이사, 가무한의 疾世無道也 設若早朝聞世有道, 暮夕而死, 可無恨矣). 또는 문(聞)을 깨우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註3) 공자가 말하는 세상의 도(道)는 인(仁)이 행해지는 그런 세상이다. 군자(君子)를 사람들은 어떤 경지에 도달한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공자가 말한 군자가 현인이거나 군주의 장중함을 지닌 사람으로는 설정하여서는 안된다. 선비의 위에 위치한 훌륭한 전인적(全人的)인 반열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 양심적이고 실천적인 인물이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가 듣고싶어 해야 할 도가 있는 세상은 이러한 양심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에 충실한 사람, 그리고 실행을 하는 사람이 사는 세상일 것이다. 아침에 도를 깨닫거나 도가 세상에 있음을 듣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을 만큼 세상에 지켜야 할 도는 우리 세상의 빛이고 기본일 것이다. 공자가 한탄한 도가 없는 세상에 지금 우리가 산다면 한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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