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논어(論語)와 공자(孔子)에 대한 일반적 이해 #1

몽그림 2022. 4. 5. 03:15

논어의 구성

논어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편에는 첫 문장의 단어를 차용하여 각각 편명(篇名) 붙여 놓았다.

 

1)학이(學而)            2)위정(爲政)          3)팔일(八佾)         4)이인(里人)        5)공야장(公冶長)

6)옹야(雍也)            7)술이(述而)          8)태백(泰伯)         9)자한(子罕)       10)향당(鄕黨)

11)선진(先進)         12)안연(顔淵)        13)자로(子路)       14)헌문(獻文)     15)위영공(衛靈公)

16)계씨(季氏)         17)양화(陽貨)        18)미자(微子)       19)자장(子張)      20)요왈(堯曰)

 

편(篇)들은 대부분이 공자의 어록이거나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공자의 말들로 되어 있다. 그 외에는 공자의 제자들 예를 들면 증자(曾子)나 자유(子有)가 한 얘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공자와 논어의 시대 배경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주(周)왕조가 도읍을 낙양부근으로 옮긴 동주(東周)시대에 해당된다. 공자가 지은 역사책인 춘추(春秋)의 이름을 따서 그 시대를 춘추시대라고 한다이 시대는 철기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왕조가 봉분한 도읍국가(都邑國家)들간의 쟁패로 강한 제후국이 약한 주변 도읍국가를 흡수하여 세력을 키우던 시기였다중국의 역사에서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는 실상은 신화의 시대이고 주나라에게 망한 상(商, 은殷나라라고도 부른다)나라 역시 신화와 역사의 중간영역에 있다. 중국은 상나라 은허(殷墟)유적지에서 갑골문등을 발굴하여 역사의 기록을 검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의 기록은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왕조를 열었던 주문왕(周文王) 주무왕(周武王)에서부터 중국역사의 실질적 기록은 시작되고 있다. 왕조의 창업은 주문왕 주무왕 이대(二代) 걸친 공동과업으로 이룩한 것으로 모든 학자들은 기록하고 있다. 왕조는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제후(諸侯)에게 봉지(封地)를 주고 중앙왕권을 유지한 최초의 봉건제(封建制) 왕조국가이다주무왕 왕조를 열고 얼마 후 죽자 그의 동생인 주공단(周公旦)무왕(武王) 후계자인 주성왕(周成王) 칠 년간 섭정하여 왕권을 안정시키고 주례(周禮)를 만들어 주나라의 기틀을 다졌다나라가 제후로 분봉을 한 제후국은 강태공이 제후가 된 제(齊)나라와 주공단에게 분봉된 노(魯)나라, 주무왕의 동생 소에게 분봉된 진(晉)나라등 을 비롯한 백여 개가 넘는 여러 제후국이 있었다나라는 기원전 770유왕(幽王) 포사에게 빠져 문란해지면서 견융(犬戎)에게 도읍인 호경(鎬京)을 함락당하고 피살되었다. 그의 아들인 태자 의구가 주평왕(周平王)으로 추대된 후 낙읍(洛邑)으로 도읍을 옮겼다이전까지의 주나라를 서주(西周)라고 하고, 주평왕 낙읍으로 동천(東遷) 이후의 주나라를 동주(東周)라고 한다동주 이후의 시기에 주나라는 명목상의 천자국으로 존재했고 각 제후국들의 패권다툼이 치열하게 일어나던 약육강식의 춘추시대와 진(晉)나라가 위(魏), 한(韓), 조(趙)나라로 분열된 이후의 전국시대를 맞게 된다춘추시대는 공자의 역사서인 춘추(春秋)를 따서 춘추시대라 이름 하였고 전국시대는 전한(前漢) 유향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에서 이름을 따서 전국시대라고 하였지만 제후국과 패권국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패권경쟁의 양상은 별반 차이가 없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살았고 농경도구에 철기문화가 보급되기는 하였지만 그 때까지도 보편적인 철기문화가 보급된 시대는 아니었다춘추시대의 패권제후국들은 존왕양이(尊王攘夷) 내세우고 다른 제후국을 힘으로 압박하여 주왕조에 충성을 다짐하는 회맹(會盟)을 하면서 실상은 자신의 패권을 확인하였다순자(荀子)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초장왕(楚莊王), 오왕합려(吳王闔閭), 월왕구천(越王句踐) 춘추오퍠(春秋五覇) 하였으나 진목공(秦穆公) 송양공(宋讓公) 여기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열국(列國) 치열한 패권싸움은 공자 사후 사백 년이 지나 진(秦)나라 시황(始皇)에 의해 통일되므로서 춘추전국시대는 끝나게 된다공자와 순자, 맹자등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 살았던 이 시대를 열국시대라고 하는데 성읍(城邑)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 형태의 성격이 강하다백성에 대한 왕래의 제한이 별반 없었고,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여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하는 형태는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연상시키게 한다이러한 환경에서 공자가 주창한 인의(仁義)와 도(道)는 열국들의 팽창과 무력대결의 환경에서는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소위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상대를 제압하지 않으면 미래를 전혀 기약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인의(仁義)예(禮) 대한 주장은 제후들에게 관심을 끌 수가 없었을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그럼에도 주유열국을 한 공자가 주창한 모든 사회질서의 정의로운 구현에 대한 사상은 인(仁)으로 귀결된다공자는 주왕조의 초기에 주공단을 중심으로 구축한 국가경영의 틀과 주례(周禮)등의 규범을 재현하여 실행하는 것을 이상적인 정치와 타당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로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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