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소학(小學) 가언제오(嘉言第四) #16

몽그림 2024. 10. 5. 07:20

馬溫公曰凡諸卑幼事無大小毋得專行必咨稟家長.

사마온공왈    범제비유    사무대소    무득전행    필자품어가장

사미온공이 말하길, 무릇 여러 아랫 사람과 어린아이는 일을 하는데 크고 작은 것을 가리는 것이 없고, 독단으로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반드시 집안의 가장에 자세히 품하여야 한다 라고 하였다.

 

(1) (낮을 비), (말 무), (물을 자), (여쭐 품), 卑幼(비유-집안에서 항열이 낮은 아랫 사람과 어린 사람)

 

(2) 온공가의(溫公家儀) 나온다사온온공은 북송의 유학자로 중국의 삼대 역사서로 꼽히는 자치통감을 지은 사마광을 말한다자는 군실(君實)이며 속수선생(涑水先生)으로 불렸다. 사후 온국공(溫國公)으로 봉해졌으므로 사마온공이라고 불렸다사마광은 송나라 영종의 명으로 전국시대와 진나라 시기까지를 여덟 권의 편년체 역사책으로 만들어 통지(通志)라는 편명으로 바쳤는데 영종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는 책명을 지어주었다이후 만년에 이르러 사마광은 자치통감의 저술을 완성하였다사마광은 어릴 때 친구들과 놀던 중 한 아이가 물이 가득찬 큰 독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어른들이 사다리와 밧줄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끌자 돌멩이로 독을 깨뜨려 친구를 구한 일화를 남긴 신동이었다또 그는 권학문에서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허물이며, 엄하게 훈도하여 가르치지 않는 것은 선생이 게으른 것이며, 아버지가 가르치고 스승이 엄하게 훈육하였는데 그 학문을 이루지 못한 것은 자식의 죄라고 명언을 남긴 교육자이기도 하다자식에게 천금의 재산을 남겨주어도 보전하기 힘들고, 만권의 책을 물려주어도 자식이 다 읽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그의 얘기가 명심보감에 나온다유학자로서 사마광은 예기에서 대학편을 분리하여 주석을 달아 대학광의(大學廣義)라는 별도의 책으로 편찬한 최초의 인물이다이를 이어서 정호와 정이 이정자가 주석을 붙여 정리하였고, 남송의 주희가 이를 기본으로 하여 경을 다시 편집하는 조경(造經)보망장(補亡章)으로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쓴 대학장구를 지어 현재 우리가 읽어보는 대학을 만들었다사마광은 북송대의 유학자로 위치가 뚜렷하지만 그의 교육관과 경세관은 현재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집안에서 아랫사람과 미성년 자식들이 집안에 관련한 일을 처리할 때는 반드시 가장에게 묻고 여쭈어 본 후에 실행할 것을 사마광이 말한 것은 현대의 조직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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