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文公家訓曰, 童穉之學, 不止記誦, 養其良知良能.
양문공가훈왈 동치지학 부지기송 양기량지량능
양문공 가훈에서 이르되, 어린 아이의 배움은 기억하고 외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지혜와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當 以先之言爲主.
당이선지언위주
당연히 먼저 말해주는 것을 위주로 하여야 한다.
日記故事, 不拘今古, 必先以孝弟忠信禮義廉恥等事.
일기고사 불구금고 필선이효제충신예의염치등사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사를 매일 기억하게 하는데 반드시 먼저 효제와 충신, 예의와 염치 등에 관한 일을 얘기해 주어야 한다.
如黃香扇枕, 陸積懷橘, 叔敖陰德, 子路負米之類, 只如俗說, 便曉此道理.
여황향선침 육적회귤 숙오음덕 자로부미지류 지여속설 변효차도리
황향이 부모 베개에 부채질을 해준 일과 육적이 귤을 품에 품었던 일과 숙오가 음덕을 쌓았던 일, 자로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백리 밖에서 쌀을 져온 일을 세상의 이야기로 들려주면 이런 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久久成熟, 德性若自然矣.
구구성숙 덕성약자연의
오랫동안 익히고 이루게 한다면 자연스레 덕이 있는 성품이 이루어 진다 라고 하였다.
(註1) 穉(어릴 치), 誦(욀 송), 拘(거리낄 구), 廉(청렴할 염), 恥(부끄러울 치), 扇(부채 선), 枕(베개 침), 懷(품을 회), 橘(귤나무 귤), 敖(놀 오), 負(짐질 부), 曉(새벽 효), 熟(익을 숙), 童穉(동치-어린아이), 良知(양지- 사람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지능이나 지혜)
(註2) 양문공가훈에 나오는 글이다. 양문공은 송나라 학자로 이름은 억(億), 자는 대년(大年), 문공은 그의 시호이다. 양문공은 말을 배우기 전인 아기 때 하인이 누각에 데리고 올라가자 "높은 누각 백자 높으니 손으로도 별을 딸 수 있겠구나. 감히 하늘위 사람이 놀랄까 큰 소리 낼 수 없구나" (危樓高百尺 手可摘星辰 不敢高聲語 怕驚天上人)라는 시를 지어 적성이라는 고사를 만든 인물이다. 이후 적성은 별을 딸 수 있는 높은 누각을 의미하게 되었다.
황향선침(黃香扇枕)은 한나라 화제시절 위군태수로 있던 황향이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남은 아버지를 모시는데, 여름에는 베갯머리에서 부채질을 하고 겨울에는 자신의 몸으로 이불을 따뜻하게 데워서 드렸다는 고사를 말한다.
육적회귤(陸積懷橘)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학자로 여섯 살 때 구강에서 원술을 만났을 때 원술이 귤을 내어 먹게 하였다. 육적은 귤을 먹는 시늉만 하고 귤을 품에 품었다가 하직인사를 할 때 땅에 떨어지자 원술이 육랑은 빈객으로 와서 귤을 훔쳐가는가 라고 하자 육적은 꿇어앉아 가져가 어머님을 드리려 하였다고 대답하자 원술이 몹시 기특하게 여겼다는 고사다.
숙오음덕(叔敖陰德)은 초장왕 때 영윤을 지낸 위오(蔿敖)에 대한 고사이다. 위오는 자가 손숙이며, 초장왕에 의해 영윤으로 발탁되자 백성을 잘 교화하고 상하를 화합하게 하여 초나라를 안정시키고 부강하게 만들었다. 숙오가 어렸을 때 밖에서 놀다가 머리가 둘 달린 뱀, 양두사를 보게 되었다. 당시 양두사를 본 사람은 죽는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숙오는 울면서 집에 돌아와 그의 어머니에게 그런 뱀을 보았으니 죽을 것이라고 서럽게 울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그 뱀을 어떻게 한 것인지를 물었고, 숙오가 다른 사람이 보게되면 자기처럼 죽을까봐 그 뱀을 죽여 땅에 묻었다고 대답했다. 그의 어머니는 남몰래 다른 사람이 해를 입지 않도록 착한 일을 한 사람은 하늘이 복을 내려 주는 것이니 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숙오의 이러한 음덕을 얘기한 것이 숙오음덕이다. 또 숙오는 영윤으로 화폐를 개혁하고 법령을 정비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공로가 컸다. 손숙오는 죽기 전에 자식인 위자빙을 불러 말하길, 내가 죽으면 왕께서 많은 영지를 내려주시겠지만 모두 사양하고 척박한 침구 땅만을 받도록 하라고 당부하였다. 손숙오가 죽은 다음 초장왕이 그의 공을 생각하여 많은 상과 영지를 내려주려 하였으나, 위자빙은 쓸모가 거의 없는 침구땅만을 사례하며 받고 나머지는 모두 사양하였다. 숙오는 사후 왕실에서 의심할 만한 재화와 땅을 가지지 않도록 자손에게 경계하였던 것이다. 후일 그의 자손들은 왕실로부터 정쟁을 피하고, 위해를 받지않고 안전하게 살았으며, 심지어 오나라의 침입을 받았을 때도 위자빙이 받은 침구땅에는 쓸모없고 불길한 땅이라 하여 발을 들이지 않았다. 숙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음덕과 자신의 현명함으로 자손의 번영과 안전을 보전할 수 있었다.
자로의 부미지류에 관한 고사를 백리부미(百里負米) 또는 백리지부(百里之負)라고 한다. 공자가어의 치사(致思)에 나오는 공자의 제자인 자로에 관한 고사이다. 자로는 소문난 효자였는데 어느날 자로가 부모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얘기하였다. 자로는 제가 관리가 되어 가난하여 부모님을 봉양할 때 녹이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부모님께 좋지 못한 음식을 대접하게 되면 저는 백리 밖에서 직접 쌀을 지고 왔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초나라 관리가 되자 수레가 백 대나 되고 창고에 쌀이 수 만석이 쌓여있었지만 부모님의 명은 마치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공자는 자로의 효성은 살아계실 때는 정성을 다해 섬기고, 돌아가신 후는 한없이 사모한다 라고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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