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孫賈事齊閔王. 王出走, 賈失王之處.
왕손가사제민왕 왕출주 가실왕지처
왕손가는 제나라 민왕을 섬겼다. 민왕이 패하여 성을 나가 달아났는데 왕손가는 왕이 간 곳을 알지 못했다.
其母曰, 女朝去而晩來, 則吾倚門而望, 女莫出而不還, 則吾倚閭而望.
기모왈 여조거이만래 즉오의문이망 여막출이불환 즉오의여이망
그의 어머니가 말하길,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면 나는 문에 기대어 네가 오기를 기다렸으며, 네가 저녁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여문을 의지하여 너를 기다렸노라.
女今事王, 王出走, 女不知其處, 女尙何歸.
여금사왕 왕출주 여불지기처 여상하귀
네가 이제 왕을 섬기다가 패하여 달아나 간 곳을 모르면서 너는 어찌 돌아왓느냐 라고 하였다.
王孫賈乃入市中, 曰, 淖齒亂齊國, 殺閔王, 欲與我誅齒者, 袒右.
왕손가내입시중 왈 뇨치란제국 살민왕 욕여아주치자 단우
왕손가는 이에 시중에 들어가 외치기를, 요치가 제나라를 어지럽혔고,민왕을 살해 했으니 나와 함께 요치를 벨 사람은 오른쪽 어깨를 벗어 드러내거라 라고 하였다.
市人從之者, 四百人. 與誅淖齒, 刺而殺之.
시인종지자 사백인 여주뇨치 자이살지
시중의 사람들이 따르니 사백 명이다. 함께 요치를 베고, 그를 찔러 죽였다.
(註1) 賈(값 가), 閔(위문할 민), 晩(저물 만), 倚(의지할 의), 還(돌아올 환), 閭(이문 여), 走(달릴 주), 淖(진흙 뇨), 誅(벨 주), 袒(웃통벗을 단), 刺(찌를 자), 莫(없을 막, 여기서는 저물 모暮로 쓰였다.), 女(汝,倚門而望 의문이망-문에 기대어 오는 것을 바라보며 기다림)
(註2)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나온다. 왕손가는 제나라 대부로 민왕을 섬겼는데, 민왕이 초나라 장수 요치에게 살해당하자 민군을 모아 요치를 죽였다. 제민왕은 제선왕의 아들로 이름은 지(地), 성은 전씨(田氏)이다. 제나라 왕족인 맹상군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룬 후에 오만하여졌고, 맹상군을 몰아내고 주변 제후국을 군사로 침입하였다. 그는 진소왕(秦昭王)과 함께 동서제(東西帝)로 제호(帝號)를 쓰다가 왕호(王號)로 바꾸었다. 소진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주변국과 합종하여 진(秦)나라에 대항하였다. 연나라에 끊임없이 침입하여 연왕을 살해하고 송나라 강왕이 무도하다고 하여 초나라와 위나라와 연합하여 송나라를 침입하여 강왕을 죽이고 송나라를 병탄하였다. 이후 삼등분한 송나라 땅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 돌아가는 초나라와 위나라군을 기습하여 패퇴시킨 후 송나라 땅을 모두 차지 하였다. 제민왕에 오랜 구원관계를 가진 연나라는 명장 악의를 중심으로 정벌군을 구성하고 진, 초, 한, 위, 조등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명장 악의에 의해 수도인 임치성이 함락되자 거땅으로 달아나 초나라 경양왕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초왕은 대장 요치를 파병하면서 상황에 따라 제나라를 구원하던지 아니면 연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멸하라고 하였다. 제나라로 온 요치는 제나라가 이미 멸망직전에 이른 것을 보고 제민왕과 신하들에게 제나라를 구하겠다고 속이고 연회를 베푼 다음, 제민왕을 잡아 가두었다. 제민왕은 요치에게 제나라의 전권을 위임하고 재상에 임명하였으나, 연나라와 내통한 요치는 제민왕을 잡아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다리의 힘줄을 뽑고 굶겨서 비참하게 살해 하였다. 이후 제나라의 전단이 연소왕이 죽고 태자가 연혜왕으로 등극한 틈을 타서 이간책을 성공시켜 악의는 소환되게 되자 조나라로 달아났다. 제민왕은 전국시대 제후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지위를 얻었다가 오만하게 되어 천자를 넘보고, 맹상군등 충직한 신하를 잃고, 자신은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제후로 기록되어 있다.
'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학(小學) 계고제사(稽古第四) #29 (0) | 2024.06.29 |
---|---|
소학(小學) 계고제사(稽古第四) #28 (0) | 2024.06.28 |
소학(小學) 계고제사(稽古第四) #26 (2) | 2024.06.26 |
소학(小學) 계고제사(稽古第四) #25 (0) | 2024.06.25 |
소학(小學) 계고제사(稽古第四) #24 (0) | 2024.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