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王之爲世子, 朝於王季日三.
문왕지위세자 조어왕계일삼
문왕이 세자로 있을 때 왕계에게 뵙기를 날마다 세 번씩 하였다.
鷄初鳴而衣服, 至於寢門外, 問內竪之御者曰, 今日安否何如.
계초명이의복 지어침문외 문내수지어자왈 금일안부하여
첫닭이 울면 의복을 정제하고 침문밖에 이르러 내정에서 모시고 있는 내수에게 묻기를, 오늘 안부가 어떠하신가? 라고 하였다.
內竪曰, 安, 文王乃喜.
내수왈 안 문왕내희
내수가 아뢰어, 편안하십니다 라고 하면 문왕은 이를 기뻐하였다.
及日中又至, 亦如之. 及莫又至, 亦如之.
급일중우지 역여지 급막우지 역여지
정오가 되면 다시 이르러 역시 이처럼 하였다. 저녁 때가 되면 다시 이르러 역시 이처럼 하였다.
其有不安節, 則內竪以告文王, 文王色憂, 行不能正履.
기유불안절 즉내수이고문왕 문왕색우 행불능정리
그 일상에 편안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 바로 내수가 문왕에게 고하면, 문왕은 근심하는 낯빛을 하고, 다닐 때는 발을 바르게 딛지 못하였다.
王季復膳然後亦復初.
왕계복선연후역복초
왕계가 식사하는 것이 회복된 연후에야 역시 처음과 같은 태도로 되돌아 갔다.
食上, 必在視寒暖之節, 食下, 問所膳, 命膳宰曰, 末有原, 應曰, 諾然後退.
식상 필재시한완지절 식하 문소선 명선재왈 말유원 응왈 락연후퇴
식사를 올릴 때는 반드시 음식이 덥고 찬 것이 조절되었는지를 살폈고, 밥상이 물러나오면 잡수신 것을 물었으며, 수라를 담당한 관리에게 명하기를, 먹다 남은 것은 다시 올리지 말라 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그리하오리다 라고 대답을 들은 후에 물러나왔다.
(註1) 竪(더벅머리 수), 否(아닐 부), 亦(또 역), 節(마디 절), 又(또 우), 履(밟을 리), 復(돌아올 복), 膳(반찬 선), 暖(따뜻할 난),應(응할 응), 諾(대답할 락), 內竪(내수-궁중의 임금 측근의 신하)
(註2) 예기 문왕세자편에 나오는 글이다. 주문왕은 그의 할아버지 고공단보가 주왕조를 흥성하게 할 인물로 예견하고, 문왕의 아버지인 계력이 셋째 아들임에도 그에게 서백의 왕위를 잇게 하여 문왕에게 위를 전하였다. 주문왕은 성이 희(姬), 이름은 창(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상서로운 기운이 있었고, 총명하여 할아버지인 고공단보는 후일 크게 흥성하리라 하였다. 상나라 서쪽의 변경지역의 신흥소국인 주나라는 상나라를 섬기는 신흥왕조였는데, 상나라의 주왕이 음란에 빠져 학정을 일삼으면서 천하의 민심이 주나라로 쏠리게 되었다. 당시 상나라의 삼공으로 구후와 악후, 후일 문왕인 서백창이 있었는데, 구후의 딸이 주왕의 후궁으로 들어갔다가 죽임을 당하고 구후 역시 죽임을 당해 고기젓으로 담가졌다. 악후가 구후의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오히려 악후 역시 포를 떠서 육포로 말리는 극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그러자 주왕의 왕족인 이복형 미자는 도망쳐 몸을 숨겼고, 숙부 비간은 충간을 하다가 심장을 도려내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 또 기자는 미친 시늉을 하다가 옥에 갖혔다. 반대로 서백창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제후들의 인심을 얻게 되자 주왕은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서백창을 잡아 유리에 감금하고, 그의 맏아들인 백읍고를 인질로 삼았다가, 서백창이 성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백읍고를 가마솥에 삶아 죽인 다음 탕국을 만들어 서백창에게 먹게 하였다. 서백창은 신하들의 뇌물로 풀려난 후, 상나라를 정벌할 결심을 하고 군마를 본격적으로 조련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상나라보다 두 배 이상의 큰 지배지역을 확보하고,대업을 준비하던 중 병을 얻어 죽었다. 그의 대업은 아들 희발에 의해 완성되었고, 희발은 주무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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