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則曰, 凡生子, 擇於諸母與可者, 必求其寬裕慈惠溫良恭敬愼而寡言者, 使爲子師.
내칙왈 범생자 택어제모여가자 필구기관유자혜온량공경신이과언자 사위자사
내칙에서 이르기를 ‘무릇 아들을 낳으면, 여러 어미와 옳은 사람중에 관대하고 여유롭고 자애롭고 은혜스럽고, 온화하며 선량하고 공손하면서 조심하고 삼가하고 말이 적은 사람을 반드시 구하여 자식의 선생으로 삼아야 한다.
子能食食敎以右手, 能言男唯女兪.
자능식식교이우수 능언남유여유
자식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가르쳐 오른손을 쓰게 하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남자 아이는 빠르게, 여자 아이는 천천히 대답하게 한다.
男鞶革, 女鞶絲.
남반혁 여반사
사내 아이는 가죽으로 띠를 하고 여자 아이는 실로써 띠를 해야 한다.
六年敎之數與方名.
육년교지수여방명
여섯 살이 되면 셈하고 방위의 이름을 가르쳐야 한다.
七年男女不同席, 不共食.
칠년남녀부동석 불공식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같이 자리를 해서 안되고, 같은 그릇으로 밥을 먹게 해서는 안된다.
八年出入門戶及卽席飮食, 必後長者, 始敎之讓.
팔년출입문호급즉석음식 필후장자 시교지양
여덟 살이 되면 문을 출입하고 자리에 앉고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어른을 먼저 하게 하여 처음으로 사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九年敎之數日.
구년교지수일
아홉 살이 되면 날짜 세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十年出就外傅, 居宿於外, 學書計, 衣不帛襦袴,
십년출취외부 거숙어외 학서계 의불백유고
열 살이 되면 외부의 스승에게 가서 교육을 받게 하고, 거처하고 자는 것을 바깥 방에서 하도록 하며, 글쓰고 계산하는 것을 배우게 하고, 옷은 저고리와 바지를 명주 비단으로 만들지 않는다.
禮帥初, 朝夕學幼儀, 請肄簡諒.
예수초 조석학유의 청이간량
예절은 처음 가르친 것을 따르게 하고, 아침 저녁으로 어린이로서 예의를 배우게 하고, 간략하고 신실한 것을 청하여 배우게 한다.
十有三年學樂誦詩, 舞勺, 成童舞象, 學射御.
십유삼년학악송시 무작 성동무상 학사어
열세 살이 되면 음악을 배우고 시를 암송하게 하고, 춤을 추게 한다. 열다섯 살이 되면 상을 추게 하고, 활쏘기와 말하는 것을 배우게 한다.
二十而冠, 始學禮, 可以衣裘帛,
이십이관 시학례 가이의구백
스무 살이 되면 관모를 쓰고 처음 성인의 예를 배우고, 이로써 갖옷과 명주비단 옷을 입게 한다.
舞大夏, 惇行孝悌, 博學不敎, 內而不出.
무대하 돈행효제 박학불교 내이불출
대하를 춤추며, 효도와 공순함을 돈독하게 실행토록 하고, 널리 배우지만 남을 가르치지 않으니 지식과 덕을 내면에 쌓아 드러내지 않는다.
三十而有室, 始理男事, 博學無方, 孫友視志.
삼십이유실 시리남사 박학무방 손우시지
서른 살이 되면 아내를 맞이하여 처음 남자의 일을 이행하고,널리 배워 구속되지 않고, 벗을 공손하게 사귀고 뜻을 볼 수 있어야 한다.
四十始仕, 方物出謀發慮, 道合則服從, 不可則去.
사십시사 방물출모발려 도합즉복종 불가즉거
마흔 살이 되면 비로서 벼슬에 나아가, 사물에 맞는 계책과 생각을 드러내고, 정치가 도에 맞으면 복종하고,도에 맞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
五十命爲大夫, 服官政, 七十致事.
오십명위대부 복관정 칠십치사
쉰 살이 명을 받아 대부가 되고, 궁궐의 정사에 복무하고, 일흔 살이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야 한다.
女子十年不出, 姆敎婉娩聽從,
여자십년불출 모교완만청종
여자 아이는 열 살이 되면 항상 집 안에 있고 밖에 나가지 않으며, 여자 선생이 유순한 말씨와 온화한 낯빛을 가지는 것과 남의 말을 정성껏 듣고 크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치게 하고,
執麻枲, 治絲繭, 織紝組紃, 學女事, 以共衣服, 觀於祭祀,
집마시 치사견 직임조순 학여사 이공의복 관어제사
삼베와 모시 길쌈을 하고, 누에를 길러 실을 뽑고, 비단명주를 직조하고 실을 땋는 아녀자의 일을 배워, 의복을 공급하고 제사에 참관하게 한다.
納酒漿籩豆葅醢, 禮相助奠.
납주장변두저해 예상조전
술과 초와 내나무 제기와 나무제기와 침제와 육장을 올려 어른을 도와 제례를 받들게 한다.
十有五年而笄, 二十而嫁. 有故二十三而嫁.
십유오년이계 이십이가 유고이십삼이가
열다섯 살이 되면 비녀를 꽂고, 스무 살이 되면 시집을 보낸다. 부모의 상을 당하면 스물 세 살에 시집보낸다.
聘則爲妻, 奔則爲妾.
빙즉위처 분즉위첩
시집갈 때 빙례의 법을 따랐으면 아내가 되고, 갖추지 않으면 첩이 된다.
(註1) 擇(가릴 택), 裕(넉넉할 유), 兪(점점 유), 鞶(큰 띠 반), 絲(실 사), 共(함께 공), 讓(사양할 양), 就(나아갈 취), 帛(비단 백), 襦(저고리 유), 傅(스승 부), 袴(바지 고), 帥(장수 수), 肄(익힐 이), 諒(살필 량), 舞(춤출 무), 勺(구기 작), 裘(갖옷 구), 惇(도타울 돈), 悌(공경할 제), 慮(생각할 려), 姆(여스승 모), 婉(아름다울 완), 娩(해산할 만), 枲(모시풀 시), 繭(고치 견), 紝(짤 임), 紃(끈 순), 漿(즙 장), 菹(채소절임 저), 醢(육장 해), 奠(제사지낼 전), 笄(비녀 계), 聘(부를 빙), 奔(달릴 분)
(註2) 남자와 여자의 교육방법은 나이에 따라 과정과 과목이 달랐다. 남녀칠세 부동석이라 하여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같이 어울려 자지 않도록 하여 서로를 구분하였다. 이 말은 실제의 뜻이 와전되어 같이 앉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석은 까는 요를 말하는 돗자리나 깔개를 말하는 석(蓆)에서 나온 것이니 같은 잠자리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내칙은 예기의 내칙편을 말하는 것으로 내칙편은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기술한 책이다. 조선시대 내간에서는 부녀자의 덕행을 닦기 위한 수신서로 양반집의 규수들에게 필독서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흔히 어른에게 절을 할 때 남자는 왼손을 위에 두고 두 손을 모으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에 두고 두 손을 모아 절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상사에서는 그 반대로 남자가 오른손을 위로 여자는 왼손을 위로 하였다. 지금은 이러한 예의범절은 사소하게 취급되고 별반 신경을 쓰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공수의 방법 역시 예절에 해당하였다. 여자들의 경우 시집 가기 전 부모에 대한 규방예의를 매우 엄중하게 가르쳤고, 내칙편을 읽게 하여 시집을 간 이후에 이러한 신중한 예의범절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엄격한 형식논리를 펴고 있는 관계로 앞서 말한 남녀칠세 부동석도 같은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되었다.
칠 세 이후에 한 이불을 덮고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신체구조가 다르고, 이성을 구분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혼숙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각 일정한 나이에 도달할 때마다 그 시기에 배워야 할 교육과 몸가짐을 가르치고 있으며, 덕행에 필요한 인성교육의 지침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고루한 옛 주자학의 굴레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실질을 지배할 수 있는 인간의 형식논리를 풀어내고 있다. 스무 살이 되어 관모를 쓰게 하는 것은 일종의 성인식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성인의 날을 기념하고 청소년에게 기운을 북돋우고 축복해 주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옛날에는 관례를 올리고 나면 성인으로 대접을 받고, 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절을 배우게 된다. 길례(吉禮), 흉례(凶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가례(嘉禮)의 다섯 가지를 배운다. 단지 나이만 들었다고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길흉사에 대한 예절과 손님을 접대하는 예절 등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절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나이값을 하지 못한다고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옛날에는 어른 노릇 하기가 오히려 지금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무작(舞勺)은 시경에서 주무왕을 칭송한 노래인 주송(周頌)의 작(酌)을 노래하며 춤추는 것을 말하고, 무상(舞象)은 시경 주송(周頌)의 무(武)를 노래하며 춤추는 것을 말한다. 무작은 술을 따르고 춤추는 것이고 무상은 상시(象詩)를 노래하며 병기를 가지고 춤을 추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춤을 추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예악의 하나였다. 연산군이 흥청과 함께 춤을 추었다는 사실을 엽기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 당시의 시대풍습과는 동떨어진 해석이 되는 셈이다. 빙(聘)은 빙례(聘禮)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결혼의례를 말한다. 빙례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여섯 가지의 예를 행하게 된다.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징(納徵), 청기(請期), 친영(親迎)의 절차를 거치는데, 이를 육례라 하며 육례를 치르는 것을 빙례라고 한다. 납채는 혼담을 시작하는 과정이다. 즉, 신부측에 매파를 보내 청혼을 하면 신부측에서 허혼을 하게 되는 혼인 약속에 관한 의례이다. 납채는 신랑의 사주단자와 청혼서를 동봉하여 붉은 보자기로 싸서 보냈고, 받는 신부측은 대청마루에 상을 정성스럽게 놓고 사주를 받았다. 문명은 신랑측에서 신부의 어머니의 성명을 묻는 절차로 신부 외가의 가계와 전통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납길은 혼인의 길흉을 점쳐 결과를 신부측에 알려주는 것이다. 납징은 혼인이 이루어진 표시로 폐물을 주는 절차이며,청기는 신랑측이 신부측에 혼인 날짜를 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절차이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신부를 맞이하는 결혼의식이다. 육례는 주나라 주공 단이 지은 의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송나라 대에 와서 주희가 주자가례를 지으면서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네 가지로 축약되었다. 의혼은 납채와 문명을, 납채는 납길과 청기를, 납징은 납폐로 바뀐 것이지만 후대에서도 혼인의 본래 뜻을 살펴 육례라고 하였다.
조선조에 친영례를 두고 왕과 신하들이 그 시행에 대해 격론을 벌이기도 하였고, 왕이나 왕세자가 친영례를 할 때는 도성의 백성들이 커다란 문화행사와 같이 함께 즐기기도 하였다. 현재도 소위 있는 가문에서는 이러한 혼인의식에 준하여 상대와 통혼을 하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간소화된 혼례의식을 치르고 있다. 육례에 대한 예의절차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지나친 혼수와 예물을 요구하여 파탄에 이르는 경우를 지금도 종종 보게 되는데 극히 잘못된 것이다. 실제 육례의 의미는 자손 만대를 잇는 신성한 의식으로서 결혼을 치르려는 뜻이었다. 조선 초만 하더라도 신랑은 신부의 집으로 친영을 가서 수 년간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존경하는 신사임당만 하더라도 빙례를 치르고 난 후에도 친정에 머물면서 친정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실제 율곡은 외가인 강릉의 오죽헌에서 나서 자랐다. 신사임당의 시어머니는 죽기 전에야 며느리를 볼 수 있었고, 시댁입장에서는 별로 바람직한 며느리였다고는 볼 수 없다. 율곡과 형제들에게는 훌륭한 어머니였겠지만, 덕수 이씨 가문에서야 어디 바람직 하였겠는가? 조선시대 여인들의 잔혹사를 얘기하고 여권의 부재를 쉽게 얘기하지만 실제 조선시대가 남성위주의 사회는 아니었다.
'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학(小學) 입교제일(立敎第一) #4 가유숙 당유상 술유서 국유학 (2) | 2023.06.10 |
---|---|
소학(小學) 입교제일(立敎第一) #3 유자상시무광 (0) | 2023.06.09 |
소학(小學) 입교제일(立敎第一) #1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1) | 2023.06.07 |
소학(小學) 소학제사(小學題辭) (0) | 2023.06.01 |
소학(小學) 서(序) - 쇄소응대 / 수신제가치국평천하 (2) | 202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