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군자지도 비여행원필자이 비여등고필자비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먼 길을 갈 때는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비유하자면 높은 곳을 오르는데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
詩云,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和樂且耽,
시운 처자호합 여고실금 형제기흡 화락차탐
시경에 처자와 서로 좋아서 어우러 화합하는 것은 비파와 거문고를 켜는 것과 같이 하고, 형제가 이미 화합하면 화락하고 또한 즐겁다.
宜爾室家, 樂爾妻帑.
의이실가 락이처노
네 집안이 이러하면 화목할 것이며 너의 처자식이 즐겁도다 라고 하였다.
子曰, 父母其順矣乎
자왈 부모기순의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부모는 그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註1) 辟(피할 피, 비유할 비, 그칠 미), 邇(가까울 이), 卑(낮을 비), 鼓(북 고), 瑟(거문고 슬), 琴(거문고 금), 翕(합할 흡), 耽(즐길 탐), 帑(금고 탕,처자 노)
(註2) 피는 비와 같다 (피, 비동 辟, 譬同). 시는 소아 상체편이다 (시, 소아상체지편 詩, 小雅常棣之篇). 비파와 거문고를 타는 것은 조화이고 흡은 화합이다 (고, 슬금화야, 흡, 역합야 鼓, 瑟琴和也, 翕, 亦合也). 탐은 또한 즐거움이고 노는 자손을 말한다 (탐, 역락야, 노, 자손야 耽, 亦樂也, 帑, 子孫也).
공자가 위의 시를 읊고 찬미하여 말하기를 사람들이 아내와 자식과 더불어 화애롭고 형과 아우와 사이가 이처럼 좋으면 부모는 그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라고 하였다 (부자송차시이찬지왈, 인능화어처자, 의어형제, 여차즉부모기안락지의 夫子誦此詩而贊之曰, 人能和於妻子, 宜於兄弟, 如此則父母其安樂之矣). 자사는 시와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먼 곳을 가려면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를 밝혔다 (자사인시급차어, 이명행원자이, 등고자비지의 子思引詩及此語, 以明行遠自邇, 登高自卑之意).
시경 소아 상체 (詩經 小雅 常棣)편
常棣之華,鄂不韡韡,凡今之人,莫如兄弟,
死喪之威,兄弟孔懷,原隰裒矣,兄弟求矣,
脊今在原,兄弟急難,每有良朋,況也永歎,
兄弟鬩于牆,外禦其務,每有良朋,烝也無戎,
喪亂既平,既安且寧,雖有兄弟,不如友生,
儐爾籩豆,飲酒之飫,兄弟既具,和樂且孺,
妻子好合,如鼓瑟琴,兄弟既翕,和樂且湛,
宜爾室家,樂爾妻帑,是究是圖,亶其然乎.
아가위 꽃, 꽃대가 드러나 보이네.
지금 사람 중에는 형제만한 사람이 있으랴.
죽음 앞에서도 형제가 서로를 생각한다.
들판 습지에 빠져도 형제는 서로를 구하리니.
할미새 들판에 있고 형제가 위급하고 어려워도,
매번 좋은 친구가 있다 해도 하물며 긴 탄식소리뿐,
형제는 집안에서 서로 다투지만 밖에서는 그 모멸을 막아준다.
매번 좋은 친구가 있다 해도 도와줄 수 없다.
세상의 죽음과 무질서 다 평정되어 안전하고 편해지면,
비록 형제가 있어도 친구보다 못하게 여긴다.
맛난 음식으로 그대를 부러 술을 돌려 마시며 즐겨도
형제가 같이 있어야 화락하고 또 사랑스러웁다.
아내와 자식과 잘 화합하고 거문고 켜는 듯 해도,
형제가 화합해야 화락하고 즐거웁다.
그대 집안의 질서를 잡고 그대 처자식이 즐겁게 하라.
이를 구하고 도모하면 진정 그렇게 되리라.
이상은 십오장이다 (우제십오장 右第十五章).
(註3) 세상 살아가는 이치는 동서 고금이 다르지 않다. 처자식이 한 마음으로 화합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집안이 화목하고 평안하면 그가 하고자 하는 일 모두가 잘 되지 않겠는가? 아무리 우리가 먼 길을 가고자 하여도 자신의 몸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건너 뛰어 하루 아침에 이루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용은 이러한 평범하지만 인간의 욕심에서 벗어나면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사상의 원류를 이해하거나 탐구하는 일은 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지만, 공자가 말한 대로 비록 성인이라 하여도 실행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평범하고 가장 인간다운 윤리를 실천하는 것에서 부터 이러한 인간의 도는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중용은 하루 아침에 고차원의 도리를 깨우쳐 하는 것 보다, 가장 인간다운 평범한 일을 실천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가끔 우리는 재벌이나 명문가의 자식이 정상에서 군림하며 행하는 것을 비난하고, 그들에 비해 우리는 왜 처음부터 낮은 곳에서 올라가야 하는지를 불평한다. 그러나 생사와 살아가는 이치가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도 하루 아침에 성인 군자가 되고, 위정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라! 가정이 화목하고, 처자식을 즐겁게 하면 어떤 만금의 재물이나, 천중의 무게보다 값진 것이 아니겠는가? 부모와 형제는 그대의 수족과 같으니, 부모를 져버리고 무엇을 성취한들 그 기쁨을 누구와 나누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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