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학(大學) 전문삼장 (傳文 三章) #3 - 유비군자 종불가훤혜

몽그림 2023. 3. 9. 03:51

詩云瞻彼淇澳한대  菉竹猗猗로다.

시운   첨피기          녹죽의의

시경에 이르기를 저기 기수 후미진 기슭에 푸른 조개풀이 숲처럼 우거졌구나.

 

有斐君子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이니,  瑟兮僩兮이며

               여탁여마         

빛나는 군자님은 자르는 듯 가는 듯 하고쪼으는 듯 갈아낸 듯 하니, 엄숙하고 꿋하도다.

 

赫兮喧兮이니  ​有斐君子  終不可諠兮로다

          유비군자      종불가훤

훤하고 또렷하구나빛나는 군자를 내내 잊을 수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는  自修也

                  

자르는 듯 쪼는 것은 배우는 길이며, 쪼는 듯 가는 것은 스스로를 닦는 것이다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이니라.

자      준율야      혁자       위의야

엄숙하고 꿋꿋하다는 것은 신중한 마음가짐이고, 훤하고 또렷하다는 것은 밖으로 드러난 위엄있는 모습이며,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이  民之不能忘也

유비군자   종불가훤자       도성덕지선      민지불능망야

빛나는 군자를 종내 잊지 못하겠다 라고 하는 것은 성덕과 지선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1) (쳐다볼 첨), (강이름), (깊을 오,후미 ), (조개풀,조개풀 ), (불깐개,부드러울 아,고분고분할 위), (아름다울 비), (끊을 절), (갈 차), (쫄 탁), (갈 마), (거문고 슬), (굳셀 한), (붉을 혁), (떠들썩할 훤),  (잊을 훤), (위엄 위), (모양 의)

 

(2) 녹죽(菉竹)은 녹초(菉草) 또는 신초(藎草)라고도 하는 물 속의 조개풀이다.

 

위(衛)나라 무공(武公)의 덕을 노래한 기욱편(淇奧篇)은 다음과 같다.

 

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咺兮,有匪君子, 終不可諼兮.

瞻彼淇奧, 綠竹靑靑, 有匪君子, 充耳琇瑩, 會弁如星, 瑟兮僩兮, 赫兮咺兮, 有匪君子, 終不可諼兮.

瞻彼淇奧, 綠竹如簀, 有匪君子, 如金如錫, 如圭如璧, 寬兮綽兮, 猗重較兮, 善戲謔兮, 不爲虐兮.

 

저 기수의 언덕을 보니, 푸른 물풀이 무성하구나빛나는 군자시여, 잘라 다듬은 듯, 쪼아 갈아놓은 듯 하구나치밀하고 굳세고,빛나며 점잖하니 빛나는 군자여 종내 잊을 수 없구나.

저 기수의 언덕을 보니 푸른 물풀 무성하구나빛나는 군자시여 귀걸이는 옥이요. 관에 달린 구슬은 별처럼 눈부시네. 치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하니 빛나는 군자여 종내 잊을 수 없구나.

저 기수의 언덕을 보니 푸른 물풀이 평상과 같구나빛나는 군자시여 금인 듯,주석인 듯,흰 옥과 같고,푸른 옥과 같구나너그럽고 여유 있으니 오호라 수레 옆에 기대어 있구나해학을 좋아 하시나 넘치지를 않는구나. 

 

위무공(衛武公) 주유왕(周幽王) 후비(后妃)포사(褒似)에게 빠져 유흥을 일삼고 실정을 하여, 견융(犬戎)에게 수도를 함락당하고 피살될 때, 군사를 이끌고 가서 오랑캐를 물리치고, 폐세자인 의구(宜臼)를 도왔다. 주유왕의 왕비는 신후(申后)였으며, 그녀는 신(申)나라 제후의 딸이었다포사에 대해서는 궁중의 늙은 시녀가 오랜 세월 동안 궁중에 보관된 용의 타액을 밟아 낳았다고 하는 기이한 출생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이 얘기는 물론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지만 사마천도 이상했던지 후반부에 주유왕이 포국을 정벌했을 때 바쳐진 여자가 포사라고 하였다주유왕에 의해 멸망한 포국의 여인이 당연히 그를 위해 웃지 않았을 것이다. 주유왕은 포사의 웃음을 보기 위해 비단을 찢는다든지 하는 기괴한 유희를 하였다마침내 국가 위급시에 쓰는 봉화를 올려 포사를 웃게 하는데 성공한 유왕은 포사의 아들 백복을 세자로 세우고 신후와 세자 의구를 폐하였다세자 의구의 외조부인 신후(申侯) 주유왕을 공격하였는데 이 때 견융족을 끌어들여 주나라 수도인 호경을 함락하고 주유왕은 주살 당한다사마천은 주유왕이 한 여인의 웃음을 얻으려고 뭇 백성들의 웃음을 빼앗고 결국 서주는 멸망하였다 라고 기록하였다서주가 견융에 의해 함락당하자 위무공은 신후의 요청으로 구원병을 이끌고 호경으로 진격하여 의구를 주평왕(周平王)으로 추대하고 낙읍으로 수도를 옮기는데 공을 세웠다.  사마천의 기록에는 위무공이 형을 죽이고 위를 찬탈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사기색은이나 시경에서는 형이 죽은 후 위후에 오른 것이라 하였다.그러나 위풍의 기오편은 무공의 덕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위풍당당한 장부를 사랑하는 노래였다는 이설(異說)도 있다절차탁마(切磋琢磨)는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논어에서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던 것은 이를 인용한 것이다.절차탁마는 각각 뼈와 상아, 옥과 돌을 쪼개고 연마하는 것을 말하지만 여기에서 절차(切磋)는 학문을 말하고 탁마(琢磨)는 수양하는 것을 말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