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학(大學) 경문일장 (經文 一章) #6 - 일시개이수신 위본

몽그림 2023. 3. 4. 04:28

自天子  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  爲本이니라

자천자   지어서인      일시개이수신      위본

천자에서 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몸을 수양하여야 하는 것이 근본이다.

 

其本亂而末治者  否矣니라

이말치자      부의

그 근본이 어지러워지면 말단을 다스릴 수 없다.

 

其所厚者  薄이요  而其所薄者에   는  未之有也니라

              자      후      미지유야

두텁게 할 바를 엷게 하고, 엷게 할 바를 두텁게 할 수는 없다.

 

(2) 일시는 일절이다 (일시, 일절야 壹是, 一切也). 정심 이상은 모두 수신에 대한 것이고 제가 이하는 이를 거론하여 놓은 것이다 (정심이상, 개소이수신야, 제가이하, 즉거차이조지이 正心以上, 皆所以修身也, 齊家以下, 則擧此而措之耳). 본은 몸을 이르는 것이고 후한 것은 집을 이르고 (본, 위신야, 소후, 위가야 , 謂身也, 所厚, 謂家也), 이 두 절은 윗 두 문장은 의미를 묶어놓은 것이다 (차양절결상문양절지의 此兩節結上文兩節之意). 위 경의 1장은 공자가 말한 것을 증자가 서술한 것이며 (우경일장, 개공자지언, 이증자술지 右經一章, 蓋孔子之言, 而曾子述之), 모두 이백다섯 글자이다. 경의 전문은 10장으로 증자의 뜻을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다 (기전십장, 즉증자지의, 이문인기지야 其傳十章, 則曾子之意, 而門人記之也)구본은 착간이 많아 정자가 확정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다시 경문을 고증하여 별도로 다음과 같이 차례를 정하였으며 (구본파유찬간, 금인정자소정, 이경고경문, 별위서차여좌 舊本頗有錯簡, 今因程子所定, 而更考經文, 別爲序次如左), 모두 1,546 글자이다전문에서는 경전을 여러 곳에서 인용하여 논리가 없는 듯 하다 (범전문잡인경전, 약무통기 凡傳文雜引經傳, 若無統紀)그러나 문장이 이치에 맞고 논리정연하면서 깊고 얕은 것이나 시작과 끝이 지극히 정밀하다 (연문리접속, 혈맥관통, 심천시종, 지위정밀 然文理接續, 血脈貫通, 深淺始終, 至爲精密). 가슴으로 읽고 상세하게 맛보며 오래도록 공부하면 당연히 알 수 있다 (숙독상미, 구당견지 熟讀詳味, 久當見之). 여기서 모두를 해석하지 않았다 (금불진석야 今不盡釋也).

 

(3) 영조가 대학을 간행하면서 쓴 서문을 보면 하, , 주 삼대에는 작은 마을에서는 숙(塾)이라는 글방을 세우고, 큰 마을에서는 상(庠)이란 학교를 세우고, 각 주에는 서(序)라는 학교를 세우고, 나라에는 학(學)이라는 학교를  세워 가르쳤다고 한다일본의 게이오 또는 와세다 같은 의숙은 동네 글방을 의미한다. 반면 나라에서 세웠다는 큰 학교는 태학(太學)을 말한다보통은 여덟 살이 되면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고 대학은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배우기 시작한다. 영조 자신도 열아홉에 대학을 처음 읽었으나 배움에 들어간 것은 십 년이 지난 이십구 세에 일이라고 하였다그리고 대학을 배우는 사람은 왕자와 귀족자제, 그리고 예외적으로 백성중에 뛰어난 사람이 배우는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대학을 고전으로 읽고 생각해 보는 것은 그 당시에 비하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대학은 논어, 맹자,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가 되면서 동양의 왕조를 유지하는 기본 규범이 되고 과거시험의 과목으로 위세를 떨쳤다고대의 국가에서 최고의 교육기관은 태학(太學)이었고, 여기에는 왕실과 귀족 중 고위관료의 자제에 대해서만 문호가 개방되어 있었다이렇듯이 근대 이전에 교육은 개방적이지 않았다. 귀족이 아닌 사람이 배워서 관직에 오르는 것은 반역죄를 고변하거나, 반란이나 전쟁에서 큰 무공을 세운 경우에 아주 예외적으로 인정될 뿐이었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반석평은 천인의 신분에서 형조판서에 까지 오른 역사 속의 인물이다. 종의 신분이었던 반석평은 시호를 장절이라 하며, 중종 2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가서 충청도,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공조참판과 형조판서를 지냈으니 천인 출신으로는 조선조에 가장 출세를 한 인물이다. 재상의 종이었던 반석평은 재상 아들이 대학을 공부하는 것을 등 넘어 에서 보고 모든 문장을 다 외우고 명료하게 해석하였다이를 보고 재상이 그의 재주를 아까워 하여 자식이 없는 친구인 반서린의 집에 양자로 보내 공부하도록 해 주었다. 당시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사림의 등용과 약진하는 분위기에서 반석평은 조광조, 김식등 유학자들과 교유하고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였다반석평은 머리도 좋았지만 대단히 청렴하였고, 과거 자신의 천한 신분을 속이지 않았다자신을 배려했던 재상을 잊지 않고, 그의 아들에 대해서도 항상 공경하였고 조정에 품계하여 자신의 벼슬을 재상의 아들에게 주도록 요청하여  몰락했던 재상의 아들도 음서로 등용될 수 있었다물론 반석평 자신이 종의 신분에서 반서린의 양자로 들어가 신분이 양반으로 바뀌어서 가능한 일이기는 하였다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조광조 일파의 현량과등 개혁정책을 펴던 조정의 분위기와 대과 급제, 그리고 신분세탁이 절묘하게 조화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당시 조선에서 반석평 같은 인물이 탄생한 것은 기적이었다반석평이 대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조정에 출사하지 못했을 것이다또한 그가 너무나 명민하여 등너머로 글을 익히는 재주를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또 대학은 조선 시대 왕이 주재하는 경연에서 신하들과 같이 읽고 공부하던 책이기도 하였다영조가 그의 손자인 정조가 세손시절에 대학의 보장망을 읽고 물어본 것이라든지, 정조가 즉위 후에도 대학을 비롯한 사서를 많이 읽고 학문이 뛰어난 신하들과 토론한 것이 모두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정자가 말한 대로 대학을 먼저 읽고 유학의 기본 개념을 파악한 다음 논어를 읽는 것은 기본 바탕을 알고 난 다음에야 유학의 서를 읽고 체계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후기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김득신은 대학의 보장망편을 삼만 번이나 읽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도 깊게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해롭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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