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12편 안연 (顔淵): 내성불구 부하우하구 #3

몽그림 2022. 10. 13. 13:38

司馬牛問君子  子曰君子不憂不懼

사마우문군자   자왈    군자불우불구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는 군자는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 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  不憂不懼謂之君子已乎  

왈    불우불구사위지군자이호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군자라고 이르는 것입니까?’라고 되묻자

 

子曰 內省不疚  夫何憂何懼

자왈    내성불구   부하우하구

공자께서는 안으로 성찰하여 꺼림칙함이 없다면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 하랴.’라고 하셨다.

 

(1) (근심할 우), (두려워할 구), (고질병 구)

 

(2) 사마우의환퇴가 난을 일으키려 하였다 (우형환퇴장위난 兄桓魋將為亂). 사마우는 스스로 송나라의 미래를 알고자 하였고 항상 근심하고 걱정하였다 (우자송래학, 상우구 牛自宋來學, 常憂懼). 고로 공자가 이를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고공자해지 故孔子解之). 구는 병이다 (구, 병야 疚, ). 스스로 반성하여 죄악이 없다면 가히 근심과 걱정이 없다 (자성무죄악, 무가우구 省無罪惡, 無可憂懼).

 

 

司馬牛憂曰人皆有兄弟  我獨亡

사마우우왈     인개유형제  아독무

사마우가 근심하여 말하길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건만 나만 홀로 없구나라고 하자,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자하왈    상문지의   사생유명   부귀재천

자하가 상이 들은 바로는 죽고 사는 것과 부귀는 천명에 달려 있으니,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군자경이무실    여인공이유례   사해지내   개형제야

군자로써 경건하여 실수가 없고 사람들을 대하여 공손하게 예를 지킨다면 사해 안에 모든 사람들이 다 형제인데

 

君子何患乎無兄弟也

군자하환호무형제야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음을 근심하리오?’라고 말하였다.

 

(1) (망할 망,없을 무), (근심 환)

 

(2) 망은 없다는 말이다 (망, 무야 亡, ). 사마우의환퇴가 악을 저질러 언제 죽을지 몰랐다 (우형환퇴행악, 사마무일 兄桓魋行惡, 亡無). 그래서 사마우는 항상 근심하고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은 형제가 있건만 만약 환퇴가 죽은 후에는 자신은 형제가 없다고 말했다 (고우상우이고인왈, 타인개유형제, 약환퇴사망지후, 아위독무형제야 牛常憂而告人, 人皆有兄, 桓魋死亡之, 為獨無兄弟也). 예로써 친해지면 모두 형제가 될 수 있음이다 (개가이례친지위형제야 可以禮親之為兄弟也).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군자하수우환어무형제 君子何須憂患於無兄弟)? 춘추좌씨전 기록을 보면 노애공 십사 년 여름에 송나라 환퇴가 총애를 받았으나 송공에게는 해를 끼쳤다 (춘추좌씨전, 애공 사십년 하, 송환퇴지총해어공 春秋左氏傳, 哀公 十四年 , 宋桓魋之寵害於公). 춘추에서는 여름 오월에 상퇴가 조읍에 들어가 반란을 했고 유월에는 조읍에서 위나라로 도망쳤다고 되어 있다 (춘추 하 오월, 송향퇴입우조이반, 조 송읍, 육월, 송향퇴자조출분위 春秋 五月, 宋向魋入于曹以叛, 宋邑, 六月, 宋向魋自曹出奔衛)그 후 환퇴는 제나라로 갔는데 제나라 진성자(陳成子)상퇴를 부경(副卿) 되게 하였다. 사마우는제나라에서 준 그 읍을 반납하고 오나라로 지만 오나라 사람들이 미워하여 쫒겨났고 마침내 노나라 도성 성곽의 문 밖에서 죽었다. 그래서 그를 구여에 장사지냈다사마우는 환퇴가 위나라로 도망가자 제나라로 가고, 환퇴가 제나라로 오자 사마우는 오나라로 갔다. 사마우는 제나라 진성자가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 桓魋(환퇴) = 向魋(상퇴)이다.

 

(3) 송나라의 사마우와 환퇴는 귀족 출신이고 환퇴는 송나라의 군권을 장악한 대부였다환퇴는 송대부로써 그의 사후를 위한 석실묘를 화려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공자가 이를 비판하자 송나라에서 강학을 하던 공자를 죽이려 하였다. 공자가 비록 화를 피하였으나 공자와 제자들은 흩어져 도망하였으므로 공자가 정나라에 이르러 길을 잃고 상갓집 개 (상가지구 喪家之狗)가 되어야 하는 일을 겪게 된다실제 사마우는 다른 형제들도 있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고 다만 형인 환퇴와는 피하는 입장이었던 것은 좌씨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자하가 말한 사해형제에서 사해를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을 가르킨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로 위로한 자하는 후일 자신의 아들이 죽자 너무 애통해 하다가 실명하고 말았는데 이 때 증자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게 된다. 어찌 사해형제 라더니 이렇게 태도가 다른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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