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8편 태백 (泰伯): 흥어시 입어례 성어악 #5

몽그림 2022. 8. 22. 03:29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자왈   흥어시     입    성어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로서 감흥이 일어나고, 예로서 바로 서며, 음악으로서 사람이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1) (시 시), (예절 예), (풍류 악)

 

(2) 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흥, 기야 , 起也). 시는 성정에 바탕을 두므로 간사함과 바른 것이 있다 (시본성정, 유사유정 詩本性情, 有邪有正). 그 말이 알기 쉬워서 읊조리는 사이에 억양을 반복하면 사람이 감흥하기 쉽다 (기위언기역지, 이음영지간, 억양반복, 기감인우역이 其爲言旣易知, 而吟詠之間, 抑揚反覆, 其感人又易入). 그러므로 처음 배울 때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일어나니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시에 의해 얻어진다 (고학자지초, 소이흥기기호선악악지심, 이불능자이자, 필어차이득지 故學者之初, 所以興起其好善惡惡之心, 而不能自已者, 必於此而得)예는 공경과 사양하는 마음이 근본이니 절제와 예문, 정도와 횟수가 있다 (예이공경사손위본, 이유절문도수지상 禮以恭敬辭遜爲本, 而有節文度數之詳). 가히 사람의 관절과 살을 굳게 모아 근육과 뼈를 단속할 수 있다 (가이고인기부지회, 근해지속 可以固人肌膚之會, 筋骸之束). 그러므로 배우는 중간단계로써 능히 우뚝 서고 사물에 동요되고 휘둘리지 않는 것은 반드시 예로써 얻을 수 있다 (고학자지중, 소이능탁연자립, 이불위사물지소요탈자, 필어차이득지 故學者之中, 所以能卓然自立, 而不爲事物之所搖奪者, 必於此而得之). 악에는 오성과 십이율이 있으니 번갈아 부르고 함께 화답하는 데 가무를 할 때 팔음절로 하면 가히 사람의 성정을 기르고 그 사악함을 씻고 찌꺼기를 버릴 수 있다 (악유오성십이율, 경창질화, 이위가무팔음지절, 가이양인지성정, 이탕척기사예, 소융기사재 有五聲十二律更唱迭和以爲歌舞八音之節可以養人之性情而蕩滌其邪穢消融其査滓). 그러므로 배움의 마지막 단계이며 의리를 정밀하게 하고 인을 익혀서 스스로 도덕에 순해 지는 것이니 이것은 반드시 음악으로 얻는 것이며 배움의 완성이다 (고학자지종, 소이지어의정인숙, 이자화순어도덕자, 필어차이득지, 시학지성야 故學者之終所以至於義精仁熟而自和順於道德者必於此而得之是學之成也).

 

 

民可使由之,  不可使知之

자왈    민가사유지    불가사지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을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그 내용을 다 알게 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1) (말미암을 유,~때문에)

 

(2) 성인의 도는 깊고 멀다. 사람들이 쉽게 알지 못한다 (성인지도심원, 인불이지야 人之道深遠, 人不易知). 백성이 능히 일용할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을 알기는 불가능하다 (이백성능일용이불능지고야 以百姓能日用而不能知故也). 집주에 말하길, 백성이 그 도리를 당연히 따르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연유한 원리를 다 알게 할 수는 없다 (집주운, 민가사지유어시리지당연, 이불능사지지기소이연야 集註云, 可使之由於是理之當然, 而不能使之知其所以然也).

 

(3) 고대의 정보와 지식이 독점되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국가경영은 투명하고 국민을 이해시키는 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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