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栢, 周人以栗, 曰, 使民戰栗.
애공문사어재아 재아대왈 하후씨이송 은입이백 주인이율 왈 사민전율
애공이 재아에게 사(神木)에 대해 묻자 재아가 대답하기를 ‘하후씨는 소나무로 하였고 은나라 사람은 잣나무로 하였습니다. 주나라 사람은 밤나무로 했지요. 백성을 전율토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자문지왈 성사불설 수사불간 개왕불태
공자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루어진 일은 애기하지 말고 끝난 일은 간하지 말고, 과거는 탓하지 말아라.’라고 하셨다.
(註1) 社(모일 사), 宰(재상 재), 后(임금 후), 松(소나무 송), 殷(성할 은)
(註2) 사(社)는 다섯 토지신을 말한다 (오토지신야 五土之神也). 사직단에서 사(社)는 토지의 신을 모시고 직(稷)은 곡물의 신을 모시는 것이다. 나라의 사직을 건립할 때 다섯 토지의 신목을 세우는데 애공이 이를 몰라서 물어본 것이다 (범건방립사, 각이기토소의목 애공미지기례 凡建邦立社, 各以其土所宜木 哀公未知其禮). 애공은 노정공의 뒤를 이어 제후에 올랐으나 삼환 가문의 포학으로 제후의 권위가 없었고 아마도 화재나 다른 이유로 소실된 사직을 세로 세우면서 그 신목에 대해 재아에게 자문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재아(宰我)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여(予), 자는 자아(子我)이다. 사(社)는 보통 토사신(土地神)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노나라 사당(祠堂)의 신주(神主) 또는 신목(神木)을 말한다.
(註3) 애공의 아버지인 정공에 의해 대사구(大司寇)와 재사(宰事)의 일을 했던 공자는 이미 애공이 삼환가에 대적할 힘이 없음을 탄식하였고 애공에게 위압에 의한 통치를 자문하는 재아가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검호
공자가 관중은 기량이 작다라고 하자, 어떤 사람이 ‘관중은 검소했습니까?’라고 물었다.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씨는 저택을 세 채나 가졌고 그 가신들이 관직을 겸하지 않았는데, 어찌 검소할 수 있었겠소?’라고 하였다.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연즉관중지례호 왈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라고 묻자 ‘임금이 가림벽을 세우자 관씨도 가림벽을 세웠고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방군위량군지호 유반점 관씨역유반점
임금이 두 나라 임금 사이에 우호를 위해 술잔을 놓는 잔대를 설치하자 또한 관씨도 잔대를 세웠다.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관씨이지례 숙부지례
관씨가 예를 알았다면 누구인들 예를 모르겠습니까?’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註1) 管(대롱 관), 仲(버금 중), 儉(검소할 검), 歸(돌아올 귀), 攝(몰아잡을 섭), 邦(나라방), 樹(나무 수), 塞(막을 색), 兩(두 양), 坫(경계 점,잔대 점), 孰(누구 숙), 焉得(언득-어찌 ~하리오), 然則(연즉-그러하다면), 塞門(색문-집안을 보이지 않도록 대문앞에 세우는 가림문), 反坫(반점-잔대,제후 회합시 술잔을 엎어놓는 잔 받침대)
(註2) 관중(管仲)은 공자보다 이백년 전 제나라 대부로 환공(桓公)을 섬겨 패권을 이루게 하였다.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이다. 관중은 '생아자 부모 지아자 포숙아야'(‘生我者 父母 知我者 鮑叔兒也’),즉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진정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라고 말하였듯이 포숙과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고사와 우정을 후세에 전하는 사람이다. 제양공의 폭정에 두 동생인 왕자 규와 왕자 소백이 해외로 망명하자 관중은 규를 섬겼고 포숙은 소백을 섬겼다. 제양공이 죽자 후계왕위를 놓고 겨루던 두 왕제는 소백이 규를 우여곡절 끝에 죽이고 왕위에 오르자 관중은 소백에 의해 죽게 되었다. 이 때 포숙은 소백, 즉 제환공에게 관중을 등용할 것을 건의하였고 제환공은 관중을 등용하여 개혁정치를 하여 춘추오패 중 첫 패자가 되었다. 관중은 포숙과 젊은 시절 함께 장사를 할 때도 더 많은 몫의 이익금을 가져갔고 포숙은 가난한 관중을 이해하였다. 그 뒤 관중이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고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쫒겨나도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세 번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은 관중이 노모를 모시고 있다고 이해하였다. 친구인 포숙의 진정한 우정을 알아준 관중도 대단하지만 친구에게 항상 배려하고 잘되도록 해 준 포숙 또한 훌륭한 사람으로 덕이 높은 사람이다. 후일 포숙의 후손들은 이런 덕행으로 모두 성공하였다. 관중이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고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숙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 관씨유삼귀(管氏有三歸)는 세 곳의 가문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것을 말하기도 하고 (부인위가왈귀 婦人謂嫁曰歸) 세 곳의 저택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뜻으로도 해석한다. 다른 이설도 있지만 대부의 저택에 여자가 없을 수 없고 당시의 풍습으로 대부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은 흉이 아니었다 (예, 대부수유첩잉, 적처유취일성. 금관중취삼성지여, 고왈유삼귀 禮, 大夫雖有妾媵, 嫡妻唯娶一姓. 今管仲娶三姓之女, 故曰有三歸). 섭(攝)은 겸하는 것을 말하고 (유겸야 猶兼也), 언(焉)은 오히려 편안한 것이다 (유안야 猶安也). 관중이 검소치 않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세 저택에 성이 다른 세 여자를 거느리고 호화 사치하게 살았다는 의미가 맞을 것이다.
(註3) 권력과 부를 함께 누린 것이 정당한 복록이라면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권력으로 부정하게 재물을 가지는 것은 불인(不仁), 비례(非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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