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 3편 팔일 (八佾): 획죄어천 무소도야 #7

몽그림 2022. 6. 8. 01:42

孫賈問曰與其媚於奧寧媚於竈何謂也

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    영미어조   하위야       

왕손가가 묻기를 신주를 모시는 방 아랫목에 아첨하느니 부뚜막에 아첨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子曰不然獲罪於天無所禱也.

자왈    불연   획죄어천    무소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데가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1) (값 가), (아첨할 미), (아랫목 오), (부엌 조), (얻을 획), (빌 도)

 

(2) 여기(與其)는 '~하느니'이고 영(寧)은 영(寗)으로 '차라리'라는 의미이다. 조(竃) 대신에 조(灶)를 쓰는데 같은 부엌을 말한다. 왕손가는 위 영공의 대부로 성이 왕손(王孫)이고 이름이 가(賈)이다. 오(奧)는 방안의 서남방의 구석으로 신주를 모셔놓은 곳이다 (미, 취향야; 오, 내야, 위실내서남우야 媚, 趣鄉也; 奧, 內也, 謂室內西南隅也). 여기서는 근신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유근신수존 以喻近臣雖尊). 그 다음은 공자가 거절하는 말이다 (공자거가지사야 子拒賈之辭). 연(然)은 그렇다는 의미이고 (. 我則不如世俗之言也), 천(天)은 군주를 비유하였고 (이유군 ), 획(獲)은 얻는다는 의미다 (유득야 得也).

 

(3) 위영공 시절 공자는 위영공과 그의 부인 남자에게 접근하였다. 이 때 위나라 군사를 맡고 있던 대부 공손가는 공자에게 차라리 자신에게 잘 보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하였다. 공자는 군주에게 죄를 짓지 않겠다며 이를 거절하였다.

 

 

周監於二代郁郁乎文哉吾從周.

자왈    주감어이대    호문재    오종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나라는 하와 은나라 두왕조의 문화를 거울로 삼았지만 더욱 찬란한 문물이 융성하였도다나는 주나라의 예법과 문물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셨다.

 

(1) (살필 감), (성할 )

 

(2) 이대(二代)는 하(夏)나라와 상(商)나라를 말한다주나라의 예법과 문장은 하와 상 두 왕조의 것을 참고하였으나 주왕조대에 와서 문물이 제대로 융성해졌다 (금주대지례법문장, 회시하, 상이대, 즉주대울울호유문장재 周代之禮法文章, 回視夏, 商二代, 則周代鬱鬱乎有文章).

 

(3) 공자는 춘추시대의 어지러운 상황은 주왕조의 예법과 문물로 돌아가 정비하는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공자가 살았던 당시의 상황을 현재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리적인 예법과 문물에 대한 의식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역사의 흔적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법과 문물은 지금처럼 복잡한 세상사에 대한 것 보다는 단순히 제정분리가 명확하지 않은 부족국가적인 성격이었을 것이다이러한 청동기 문화에 비해 철기문화가 도입되고 봉제후가 이루어진 주나라 제도와 문물은 앞선 두 왕조의 것과 비교하면 현대 입장에서 보면 근세와 현대사회 만큼이나 차이가 있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공자가 이상적인 국가체계와 사회윤리 규범이 현대와는 상통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취할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 그리고 사회현상에 대한 우리의 접근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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