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以不周
자왈 군자 주이불비 소인 비이불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두루 친하되 편파적인 패거리를 짓지 아니하고 소인은 편파적인 패거리를 지을 뿐 두루 친하게 사귀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註1) 周(두루 주), 比(견줄 비)
(註2) 공안국 고주(古註)에는 충신위주(忠信為周), 아당위비(阿黨為比) 즉, 충성스럽고 신의를 지키는 것이 주(周)이고 아첨하며 무리를 짓는 것을 비(比)라고 하였다. 정의(正義)에는 소인은 덕행이 같지가 않아서 충과 신에 대해 널리 얘기하면서도 아첨하는 무리로 패당을 짓고 (소인덕행부동지사 충신위주, 아당위비 小人德行不同之事 忠信為周,阿黨為比) 군자는 늘 충과 신을 실행하고 사사로이 아첨하고 패당을 짓지 아니하니 소인과는 반대라고 하였다 (언군자상행충신, 이불사상아당, 소인즉반시 言君子常行忠信, 而不私相阿黨, 小人則反是).
(註3)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반대의 개념으로 정하여 말하고 있다. 처음 학이편에서 얘기한 대로 군자는 선량한 시민의 개념이고 소인은 사회와 국가에서 부정적인 해악을 끼치는 시민이다. 공자가 제시하는 군자는 전인적인 인격체를 갖춘 현자나 성인이 아니라 이상국가를 위해 인간이 노력해야 할 백성이며 시민이다. 인(仁)을 실천할 수 있는 소양을 가지고 효(孝), 예(禮), 의(義), 지(知), 신(信)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공자가 말하는 군자라고 생각한다. 심오한 사상이나 철학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학자들의 영역이지만 보편적이고 편벽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 군자의 모습이고 국가의 구성원인 백성 즉 현대의 시민들이 군자가 되는 것을 공자는 주장하고 있다. 편벽되고 이기적이며 편의적인 생각을 하면 공자는 불인(不仁)한 사람이라 했고 불인(不仁)한 사람은 소인(小人)일 수 밖에 없다.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체계가 없어 얻고 깨닫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곧 피로하고 오류에 위태롭다.’라고 하셨다.
(註1) 罔(그물 망), 殆(위태로울 태)
(註2) 이문장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말한 것이라 하였는데 (교학법야 敎學法也) 즉, 스승에게 따라 배운다 하더라도 그 의미를 찾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그물로 얻는 것이 없고 (약수종사학, 이부심사기의, 즉망연무소득야 若雖從師學, 而不尋思其義, 則罔然無所得也), 다만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 깊게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면 종래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정신이 피로해고 권태로워진다 라고 하였다 (언단자심사, 이불왕종사학, 종졸불득기의, 즉도사인정신피로권태 言但自尋思, 而不往從師學, 終卒不得其義, 則徒使人精神疲勞倦殆). 또 학이불사(學而不思)와 사이불학(思而不學)은 둘 다 모두 공자는 부정하고 있다. 둘 다 의미가 없는 것이니 학이사(學而思) 또는 사이학(思而學)이 가르치고 배우는 자세로 바람직 할 것이다.
(註3) 가르치는 방법과 배우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더 효과적이고 사람의 성격에 맞는 방법은 있겠지만 그 원리에 대한 것은 결국은 같지 않을까 싶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배운 것을 생각 없이 줏어 담기만 한다고 해서 자기의 배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고 다시 복습하고 생각하여 체계화하는 것이 배우는 자세이고 배운다는 것은 스승이 가르치는 새로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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