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公十四年, 孔子年五十六, 由大司寇行攝相事,
정공사십년 공자년오십육 유대사구 행섭상사
정공 십사년 공자 나이 오십육 세때 대사구 행섭상사가 되었다.
有喜色. 門人曰, 聞君子禍至不懼, 福至不喜.
유희색 문인왈 문군자화지불구 복지불희
얼굴에 기쁜 빛을 띠자 문인이 묻기를 '군자는 화가 닥쳐도 두려워 하지 않으며, 복이 와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고 하였다.
孔子曰, 有是言也. 不曰, 樂其以貴下人, 乎?
공자왈 유시언야 부왈 악기이귀하인 호
공자가 '그 말이 맞다. 그러나 귀하게 되어 아랫 사람을 대하는 것이 즐겁다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於是誅魯大夫亂政者少正卯.
이서주노 대부난정자소정묘
이어 정사를 어지럽힌 노대부 소정묘를 주살하였다.
與聞國政三月, 粥羔豚者弗飾賈. 男女行者別於塗. 塗不拾遺.
여문국정삼월 죽고돈자 불식가 남녀행자 별어도 도불습유
국정을 맡아 삼개월이 경과하자 죽과 양, 돼지고기를 파는 장사들이 값을 속이지 않고 남녀가 길을 다닐 때 떨어져 걷고, 길거리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서도 가지지 않았다.
四方之客至乎邑者不求有司, 皆予之以歸
사방지객지 호읍자 불구유사 개여지이귀
사방에서 손님들이 와도 관리에게 구하는 일이 없어지고, 그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註) ① 소정묘 주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사실여부와 함께 논란거리이다. 대체로 소정묘가 공자와 같은 교육 및 사상가로 공자의 라이벌이며 공자가 내세운 죄목 또한 주살될 만한 죄가 아니라고 한다. 소정묘는 숙손씨 출신의 유학자로 알려져 있고 공자처럼 교육학당을 운영하던 관리였다고 한다. 공자는 행섭상사가 된 지 일주일 만에 소정묘를 죽였는데 이후 관리의 기강이 바로 잡혔다고 한다. 공자가 열거한 소정묘의 죄악은 (1) 머리회전이 빠르고 음험하다. (2) 행실이 한편으로 치우쳐 고루하다.(3) 거짓말을 하면서 달변이다. (4)추한 것을 외우고 다니며 박학다식한 척한다. (5)아닌 것에 찬성하고 분식을 잘한다는 다섯 가지이다.
소정묘의 주살은 실체적인 죄라기 보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느낌이다. 살권귀이위중심(殺權貴而威衆心)이라는 한신의 말이 생각나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즉 권세 있고 지체 높은 자를 죽여서 위엄을 세우는 격이다. 소정묘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 공자를 높이기 위한 가공의 인물이라는 얘기도 있다. 인과 예, 그리고 도의를 강조한 공자의 태도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중요한 관점은 법가적 통치방식을 행한 점일 것이다. 백성들이 도의를 체득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다기 보다, 강제적이고 물리적인 정치를 보인 점이다.
② 섭행상사는 재상이다. 요즘 말로 총리서리 정도로 보면 가하다.
齊人聞而懼, 曰, 孔子為政必霸, 霸則吾地近焉, 我之為先并矣. 盍致地焉?
제인문이구 왈 공자위정필패 패즉오지근언 아지위선병의 합치지언
제군주가 듣고 두려워하며 '공자가 정사를 보니 반드시 노나라가 패자가 될 것인데, 패자가 되면 우리가 이웃이니 우리가 먼저 병합될 것이다. 어찌 땅을 떼어 바치지 않는가?'고 하였다.
黎鉏曰, 請先嘗沮之. 沮之而不可則致地, 庸遲乎!
여서왈 청선상저지 저지이불가즉치지 용지호
여서가 말하길 '먼저 이를 저지하길 바랍니다. 저지를 하지 못하면 땅을 떼어 바쳐도 되는 것이니 늦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於是選齊國中女子好者八十人, 皆衣文衣而舞康樂, 文馬三十駟, 遺魯君.
어시선제 국중녀자 호자팔십인 개의문의 이무강락 문마삼십사 유노군
이에 제나라의 미녀 팔십 명을 뽑아 예쁜 옷을 입혀 강락무를 가르친 다음 무늬가 있는 말 삼십 필이 끄는 사두마차에 태워 노나라로 보냈다.
陳女樂文馬於魯城南高門外,季桓子微服往觀再三,
진여악문마 어노성남고문외 계환자 미복 왕관재삼
여악과 문마를 노나라 성 남문 밖에 높이 진열시키자, 계환자가 미복을 입고 세 번이나 가서 구경하였다.
將受, 乃語魯君為周道游, 往觀終日, 怠於政事.
장수 내어노군 위주도유 왕관종일 태어정사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침내 노군주와 영내를 순시한다고 말하고 가서 종일토록 구경하면서 정사를 태만히 하게 되었다.
子路曰, 夫子可以行矣. 孔子曰, 魯今且郊, 如致膰乎大夫, 則吾猶可以止.
자로왈 대부가이행의 공자왈 노금차교 여치번호대부 즉오요가 이지
자로가 말하길 '선생님이 떠나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고 하자 ,공자는 '노임금께서 교외에서 제사를 지낼 때 대부에게 제사고기를 나누어 준다면 아직은 떠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했다.
桓子卒受齊女樂, 三日不聽政. 郊, 又不致膰俎於大夫.
환자졸수제여악 삼일불청정 교 우불치번조어대부
환자가 제여악을 받고 삼 일 간이나 조회에 등청하지 않았다. 교제를 지낸 뒤에도 대부들에게 제사음식도 나눠주지 않았다.
孔子遂行, 宿乎屯. 而師己送, 曰, 夫子則非罪.
공자수행 숙호둔 이사기송 왈 부자즉비죄
공자가 떠났다. 도중에 둔에서 묵었는데 태사 기가 환송하면서 말하길 '선생이 아무 죄가 없는데 어찌 떠나십니까?'라고 물었다.
孔子曰, 吾歌可夫? 歌曰, 彼婦之口, 可以出走.
공자왈 오가가부 가왈 피부지구 가이출주
공자가 '내가 노래를 한 곡 불러보랴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임금이 여인네를 좋아하면 군자는 떠나고,
彼婦之謁, 可以死敗. 蓋優哉游哉, 維以卒歲!
피부지알 가이사패 개우재유재 유이졸세
군주가 여인네를 가까이 하면 나라가 패망한다. 걱정에 침노하지 않고 유유히 세상을 살다 가려 함이네.'라고 노래를 하였다.
師己反, 桓子曰, 孔子亦何言?
사기반 환자왈 공자역하언
태사 기가 돌아오자 계환자가 공자가 뭐라고 했나요? 라고 물었다.
師己以實告. 桓子喟然歎曰, 夫子罪我以群婢故也夫!
사기이실고 환자위연탄왈 부자죄아이군비고야부
태사가 사실대로 고하자 환자는 괴롭게 탄식하며 '공자는 내가 제나라 비첩의 무리를 받은 것을 성토하는구나!'라고 하였다.
(註) ① 계환자와 노정공이 제나라 여악에 현혹되어 정사를 등한시 한 것을 보고 공자는 노나라를 다시 부흥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떠나는데 이것이 주유열국의 계기가 된다. 이전에도 다른 제후국을 방문하였지만 짧은 정치 실험에 자신을 얻은 공자가 새로운 군주를 찾아 나선 것이다. 공자는 주문공을 흠모하였고, 동주의 정치를 부흥하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하였다.
② 제경공이 미인계를 쓰면서 노나라가 잘되는 것을 방해하려 한 것이라면, 공자의 정치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인접국간의 세력판도는 각 제후국의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춘추시대에서는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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