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태사공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 #10

몽그림 2022. 4. 22. 00:47

去即過蒲. 月餘. 反乎衛. 主蘧伯玉家.

거즉과포   월여   반호위  주거백옥가 

광을 떠나 포땅을 지나서 한달여 만에 다시 위나라로 돌아와 거백옥의 집에 머물렀다.

 

靈公夫人有南子者, 使人謂孔子曰,

영공부인유남자자    사인위공자왈

영공의 부인 남자가 사람을 보내 공자에게 말하길

 

四方之君子不辱欲與寡君為兄弟者, 必見寡小君. 寡小君願見,

사방지굼자 부욕욕여과군 위형제자   필견과소군    과소군원견

'저희 군주와 형제처럼 만나려는 사방의 군자들은 먼저 과소군을 뵈어야 욕을 당하지 않습니다과소군께서 뵙고자 합니다.'고 하였다.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공자사사   부득이이견지

공자가 사례하고 사양하였으나 부득이 만나게 되었다

 

夫人在絺帷中. 孔子入門, 北面稽首夫人自帷中再拜, 環珮玉聲璆然.

부인재치유중    공자입문   북면계수    부인자유중재배   환패옥성구연

부인이 휘장 뒤에 있으므로 공자가 들어와 북면하여 절하고 부인은 휘장 안에서 재배하였다둥근 패옥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孔子曰, 吾鄉為弗見, 見之禮答焉子路不說.

공자왈   오향위불견    견지예답언    자로불설

공자가 말하길 '내가 원래 만나고자 하지 않았지만 예의상 답방하여 만났다.'라고 하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孔子矢之曰, 予所不者, 天厭之!  天厭之!

공자시지왈    여소불자   천염지    천염지 

공자가 맹세하며 말하길 '잘못이 있다면 하늘이 나를 미워할 것이다하늘이 나를 미워할 것이야!'하고 말했다.

 

居衛月餘, 靈公與夫人同車, 宦者雍渠參乘, , 使孔子為次乘, 招搖巿過之.

거위월여    영공여부인동차   환자옹거참승   출   사공자위차승   초요불과지

한달여 간 위나라에 머문 뒤 영공이 남자와 같은 수레를 타고 환관 옹기를 시자로 태워 궁문을 나섰다. 공자를 뒤에 수레에 타게 하고 거드름을 피며 시내를 통과하였다.

 

孔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공자왈  오미견호덕여호색자야

공자가 말하길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노라.'고 하였다.

 

於是醜之去衛過曹是歲, 魯定公卒

어시추지   거위   과조   시세   노정공졸

이에 실망한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조나라를 지나 갔으며, 이 해에 노정공이 죽었다.

 

() 거백옥은 이름이 원(瑗)이고, 자는 백옥, 위나라 대부이다. 오나라의 왕위를 양보한 현인이었던 계찰이 거백옥이야말로 군자라고 한 사람이다. 공자도 거백옥을 군자로 칭송하였다.

② 남자(南子)는 송나라 왕녀로 위영공의 후비가 되었는데 이복오빠인 송조와의 사통과 남자관계가 문란하여 좋은 평을 듣지 못하였다자로가 후일 남자로 인해 벌어진 위나라 왕위 싸움에 휘말려 죽게 되는 것이니  남자와의 인연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공자의 스캔들로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얘기가 남자와의 만남이다그러나 오십대의 장년인 공자가 젊고 미모의 왕비와 한 번 만나서 사랑을 불태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자신이 부끄럽지 않다고 하늘까지 팔아가면서 맹세해야 할 정도로 남자는 문란하였던 모양이다확인되지 않았지만 공자가 여자문제로 인한 스캔들 치고는 싱겁다.

 

 

孔子去曹適宋, 與弟子習禮大樹下.

공자거조적송   여제자습 례대수하

공자가 조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갔다제자들과 큰 나무 아래에서 예에 대해 강론을 했다.

 

宋司馬桓魋欲殺孔子, 拔其樹.

송 사마환추욕살공자  발기수

송의 사마환추가 공자를 죽이려고 그 나무를 뽑았다.

 

孔子去. 弟子曰, 可以速矣.

공자거   제자왈   가이속의 

공자가 떠날 때 제자들이 '속히 가시지요.'라고 하였다.

 

孔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공자왈   천생덕어여    환추기여여하

'하늘이 내게 덕을 주셨거늘 환추가 나를 어찌하랴!'고 하였다.

 

孔子適鄭, 與弟子相失, 孔子獨立郭東門.

공자적정   여제자상실   공자독립곽동문

공자가 정나라로 갔는데 제자들과 헤어지게 되었다공자가 홀로 동문 성곽에 서있었는데

 

鄭人或謂子貢曰, 東門有人, 其顙似堯, 其項類皋陶, 其肩類子產,

정인혹위자공왈    동문유인   기상사요   기항유고요   기견유자산 

정나라 사람이 자공에게 이르기를 '동문에 한 사람이 있는데 이마는 요임금 같고목덜미는 고요를 닮았고어깨는 자산과 비슷했다오

 

然自要以下不及禹三寸纍纍若喪家之狗.

연자요이불불급우삼촌     누누약상가지구  

그러나 허리 밑은 우임금보다 세 치가 짧고, 풀이 죽은 모양이 마치 상가집 개꼴 이더군요.'라고 하였다.

 

子貢以實告孔子. 孔子欣然笑曰. 形狀. 末也. 而謂似喪家之狗, 然哉!  然哉!

자공이실고공자    공자흔연소왈   형상   말야  이위사상가지구    연재    연재

자공이 공자에게 사실대로 고하자 공자가 흔연히 웃으면서 형상이야 아니겠지만, 상가집 개와 유사하다고 이르는 것은 그렇고말고,그렇고 말고!'라고 하였다.

 

() 사마환추는 송나라의 군권을 가진 대부로 제자인 사마우의 형이다. 사마환추는 탐욕하여 자신의 죽은 뒤 묻힐 석분묘를 짓고 있었는데 삼년 간이나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공자가 이를 비판하자 사마환추는 공자를 죽이려 한 것이다논어에 표현된 것과는 달리 공자는 황급히 달아났으며 미복으로 변장하여 정나라로 도망쳤다는 기록도 있다. 사마환추에게 당한 재액은 공자가 광읍의 재액 다음으로 주유 중에 당한 재난이었다. 공자를 죽이려 한 사마환추가 짓던 묘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하여 공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사마환추가 짓던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제자 사마우는 형인 환추의 포악함과 탐욕을 걱정하였으나 사마환추는 끝내 난을 일으키고 송나라에서 도망쳐 오나라에서 살다가 죽었다이 때 사마우는 다른 사람은 형제가 있건만 자신은 형제가 없다고 넋두리하자, 자하가 사해가 모두 형제거늘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였다그러나 정작 자하는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너무 슬퍼한 나머지 실명하고 말았는데, 증자에게 이 때 한 말로 인해 호된 욕을 먹게 된다.

고요는 임금의 신하로 형옥을 담당하였다. 동이족의 우두머리로 우임금의 후계자로 지명되었으나 그보다 먼저 죽었다.

③ 자산은 공자보다 오십여 년 앞선 사람으로 정나라 대부 공손교를 말한다. 자산은 그의 자이다. 정간공을 보좌하여 상경의 지위에 있으면서 전제를 개혁하고 향교를 만들어 교육을 장려하였다. 자산은 중국 최초의 성문법을 제정 반포하여 실시한 인물이며, 강대 제후국과의 능란한 외교술로 정나라를 안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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