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母之喪, 中門外擇樸陋之室, 爲丈夫喪次.
부모지상 중문외택박누지실 위장부상차
부모 상에는 중문 밖에 소박하고 좁은 방을 선택하여 남자가 상례를 치르며 거처하는 상차로 한다.
斬衰寢苫, 枕塊, 不脫絰帶, 不與人坐焉.
참쇠침점 침괴 불탈질대 불여인좌언
상을 당하면 거적에서 자고 흙덩이를 베며, 머리에 맨 띠와 허리에 맨 띠를 벗지 않고 다른 사람과 함께 앉지 않는다.
婦人次於中門之內別室, 撤去帷帳衾褥華麗之物.
부인차어중문지내별실 철거유장금욕화려지물
부인은 중문 안의 별실에 거처하고 휘장과 이불과 요와 같은 물건을 치워야 한다.
男子無故, 不入中門, 婦人不得輒室男子喪次.
남자무고 불입중문 부인불득첩실남자상차
남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중문 안에 들어가지 않고, 부인은 홀연히 남자가 거처하는 곳에 가지 않는다.
晉陳壽遭父喪, 有疾使婢丸藥.
진진수조부상 유질사비환약
진나라 진수는 아버지상을 당하자 병이 나서 계집종에게 약을 지어오게 시켰다.
客往見, 鄕黨以爲貶議.
객왕견 향당이위폄의
손님들이 가서 이것을 보고는 마을 사람들이 안좋게 평하였다.
坐是沈滯, 坎坷終身.
좌시침체 감가종신
이로 인해 오랫동안 승진하지 못했고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다.
嫌疑之際, 不可不愼.
혐의지제 불가부신
그러므로 의심을 받을 만한 때는 삼가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註1) 擇(가릴 택), 樸(순박할 박), 陋(좁을 누), 斬(벨 참), 苫(이엉 점), 塊(덩어리 괴), 絰(질 질), 撤(거둘 철), 帷(휘장 유), 衾(이불 금), 褥(요 욕), 麗(고울 려), 輒(눈득 첩), 遭(만날 조), 婢(계집종 비), 丸(알 환), 貶(떨어뜨릴 폄), 滯(막힐 체), 坎(구덩이 감), 坷(평탄하지 않을 가), 嫌(싫어할 혐), 樸陋(박루-좁고 꾸미지 않는 것), 絰帶(질대-짚으로 삼껍질을 감아 만든 머리띠와 허리띠), 坐是沈滯(좌시침체-허물이 되어 승진하지 못하는 것)
(註2) 역시 온공서의(溫公書儀)에 나온 글이다. 진수는 정사 삼국지를 저술한 문인이다. 처음 촉한에서 벼슬을 하였으나 유비의 뒤를 이은 유선이 진나라에 항복하자 후일 진무제에게 나아가 벼슬하였다. 진수는 시어사 벼슬에 있을 때 그의 모친의 장례를 고향에서 치르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진수는 삼국지에서 위나라의 조조에게 정통성을 부여하였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그의 삼국지는 위서, 촉서, 오서로 나누어 삼국을 대등하게 서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제갈량집을 지어 제갈량을 정사에 큰 인물로 부각하였다. 진수의 큰 공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고대 한국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수가 기술한 동이전은 정확히 삼국지 위서 동이전으로 위서 삼십권에 수록된 것으로 서문과 부여, 고구려, 동옥저, 읍루, 예 등에 대한 기록이다. 그 이전의 사기와 한서등의 조선전은 간단하게 조선과의 접촉 사실만을 단편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사기에서는 고조선의 멸망에 대한 기록뿐이다. 그러나 위서 동이전의 경우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과 동예의 무천등 행사와 천군과 소도 사상을 기술함으로써 우리 고대사회의 사회구조를 볼 수 있게 한 사료라는 점에서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진수의 삼국지 기록 역시 정사인 위서의 부분으로 쓰여있고, 그들의 중화적인 시각으로 논술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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