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柴自見孔子, 足不履影, 啓蟄不殺, 方長不折.
고시자견공자 족불리영 계칩불살 방장불절
고시는 자신 스스로 공자를 만난 뒤 발로 남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으며,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을 죽이지 않았고,자라는 식물을 꺽지 않았다.
衛輒之難, 出而門閉.
위첩지난 출이문폐
위나라 군주인 첩의 난리에 성문을 나가려는데 문이 닫혀버렸다.
或曰, 此有徑.
혹왈 차유경
어떤 사람이 ‘여기 지름길이 있소’ 라고 하자
子羔曰, 吾聞之, 君子不徑.
자고왈 오문지 군자불경
자고가 답하기를, ‘나는 군자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는다라고 알고 있다.’ 라고 하였다.
曰, 此有竇.
왈 차유두
어떤 사람이 다시 ‘이곳에 구멍이 있다.’라고 하자,
子羔曰, 吾聞之, 君子不竇.
자고왈 오문지 군자불두
자고는 ‘나는 군자는 구멍으로도 다니지 않는다 라고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有間使者至, 門啓而出.
유간사자지 문계이출
조금 후에 사자가 와서 문을 열자 성을 나갔다.
(註1) 柴(섶 시), 啓(열 계), 蟄(숨을 칩), 折(꺾을 절), 輒(문득 첩), 羔(새끼양 고), 竇(구멍 두)
(註2) 공자가어(孔子家語) 제자행편(弟子行篇)에 나오는 자고의 얘기이다. 고시(高柴)는 공자의 제자로 자가 자고(子羔)이다. 여기에 배경이 되는 고사는 어지럽다. 이 난리통에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로가 죽임을 당하고 젓갈로 담가졌으며, 공자는 울부짖으며 슬퍼하고 병석에 누워 죽게 된다. 첩은 위나라 영공의 뒤를 이은 위출공(衛出公)이다. 위영공(衛靈公)의 부인 남자(南子)는 공자와도 스캔들이 있고, 송공자(宋公子)인 조(朝)와 사통을 하는 등 행실이 아름답지 못했다. 위영공에게는 맏아들인 괴외가 있었는데, 송나라 사람들이 남자의 행실을 비난하자 격분하여 남자를 죽이려다 실패하여 국외로 달아났다. 위영공이 죽자 남자는 괴외의 아들인 첩을 군주로 세우니 이 사람이 위출공이다. 위출공은 자신의 제후위를 위협하는 아버지 괴외의 귀국을 막고 있었다. 이 때 공자는 귀국하여 음악을 정리하고 역학에 심취하며 말년제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위출공에게 출사하여 대부벼슬을 하던 공회에게 자고와 함께 있었다. 공회의 어머니는 괴외의 누이였는데, 마침 집안의 노비와 통정하고 있었다. 통정한 노비와 공회의 어머니를 이용하여 태자 괴외는 귀국하여 공회를 인질로 잡고 위출공을 몰아내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이 때 소식을 들은 자로가 공회를 구하기 위해 성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자고와 마주쳤다. 자고는 성문을 탈출해 나오던 길이었으므로 들어가려는 자로를 말렸지만, 자로는 공회의 녹을 먹는 이상 구해야 한다며 성안으로 들어갔다. 자로가 성 안에 들어가 누대 밑에서 괴외에게 공회를 풀어 주지 않으면 불을 지르겠다고 고함치자 공회의 가신들이 자로를 죽였다. 이 때 유명한 일화가 군자는 갓 끈을 매고 죽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자로가 죽자 괴외는 궁성을 공격하여 아들인 위출공을 도망치게 하고 제후위에 오르니 이가 위장공(衛莊公)이다. 위장공은 즉위하면서 어머니인 남자를 죽이고, 공자의 제자 자로를 해형에 처해 장독에 젓갈로 담가서 공자에게 보냈다. 공자가 위나라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아 자고는 돌아올테지만 유(자로)는 죽겠구나.’라고 탄식하며 자로의 죽음을 예견하였다고 한다. 위장공은 삼 년이 체 안되어 자신이 국외에 머물 때 귀국에 앞장서지 않았던 대신들을 박해하고, 주변을 폭압으로 다스리다가 석공들의 손에 죽었다. 그 후 위출공은 다시 돌아와 이십여 년을 제후위에 있었다. 위나라 제후위를 둘러싼 난리의 인물들은 모두 공자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위영공은 공자가 여러 번 찾아갔던 인물이며, 그의 아내 남자는 공자와의 염문으로 공자가 제자인 자로의 항의를 받게 한 위영공의 왕비이다. 죽은 자로와 살아나온 자고는 공자의 제자들이다. 원래 위나라는 주나라 제실의 왕자인 주강숙을 주공 단이 위나라 제후로 봉하면서 시작된 제후국으로 공자도 위나라는 자신의 노나라와 형제간이라고 말했었다. 자로가 죽기 전해에 사랑하는 제자 안연을 잃은 공자의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믿었던 제자 자로가 죽자 공자는 하늘이 자기를 망하게 한 것이라며 슬퍼하다가 병석에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여기서는 자고의 삼가하는 인품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 장면에서 자로의 의기를 높게 평가하는 장면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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