虞舜父頑母嚚, 象傲,
우순부완모은 상오
우순의 아버지는 아둔하였고, 계모는 간사하였으며, 이복동생 상은 오만하였다.
克諧以孝, 烝烝乂, 不格姦.
극해이효 증증예 불격간
순은 효행으로 가족을 화목하게 하였고, 점차 선으로 다스려 간악함에 이르지 않도록 하였다.
(註1) 虞(근심할 우,우나라 우), 頑(완고할 완), 嚚(어리석을 은), 象(코끼리 상), 傲(거만할 오), 諧(다 해), 烝(김오를 증), 乂(벨 예), 姦(간사할 간), 烝烝乂(증증예-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다), 克(이길 극), 格(격식 격)
(註2)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나온다. 옛날 대순께서는 아버지는 완고하고 어머니는 어리석었다. 일찌기 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순은 효도로써 이를 극복하고 점차 간악함에 이르지 않도록 하였다. 효자의 도리는 이와 같이 지극한 것이다. 순 임금의 효를 대효(大孝)라고 한다. 일설에는 순 임금은 동이족인 고조선 출신으로 농업을 관장하던 대신인고수의 아들이라 하며, 지금 우리가 야외에서 음식을 먹을 때 하는 고수례는 이를 기념한 것이라고 한다. 맹자는 그의 저서에서 순은 동이 사람이라고 썼다. 중국 사기에 나오는 순임금의 얘기를 보면, 순은 중국 신화시대 오제의 마지막 황제로 요임금과 함께 가장 평안한 태평시대를 다스린 임금이다. 순임금의 성은 요(姚)씨이고, 이름은 중화(重華)이고 우순(虞舜) 또는 제순유우(帝舜有虞)로도 부른다. 동이 사람으로 전욱의 육대손으로 제풍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빈천하게 살았다. 역산(历山)에서 바쁘게 농사일에 종사하면서도 뢰택(雷泽)에서 물고기를 잡고 살았다. 때때로 도자기를 굽고 일용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순의 아버지 고수는 장님으로 아내가 죽자 후처를 맞아 순의 이복동생인 상을 낳았다. 순의 아버지는 우매하고 계모는 포악하고, 이복동생 상은 음험하여 순을 매우 괴롭게 하였으나, 순은 지극한 효행을 다하였으며, 사람들에게 알려져 칭송을 받게 되었다. 요임금이 나이가 들어 사악의 제후들에게 자신의 후계를 추천하도록 하였는데, 모두가 순을 추천하였다. 요임금은 두 딸 아황과 여영을 순에게 시집보내고, 아홉명의 아들을 곁에서 살게 하였는데, 부부의 금슬도 좋고, 주위 사람들이 그의 인품을 흠모하여 크게 따르는 것을 보았고, 요에게 양 등 가축과 창고를 짓게 허락하자 순의 아버지 고수와 계모, 그리고 이복동생은 순을 죽이려고 시도하였다. 창고를 짓기 위해 지붕에 올라간 순을 보고 사다리를 치웠으나 죽이지 못하자, 또 우물을 파게 하여 돌로 메워 죽이려 하였다. 아버지와 계모는 요임금이 하사한 가축을 차지하고, 이복동생 상은 순의 두 아내인 아황과 여영을 차지하려 하였다. 탈출한 순은 이후에도 변함없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복동생을 사랑하였다. 마침내 요임금은 길일을 택해 순에게 선양하였다. 요임금에게는 단주라는 큰 아들이 있었으므로, 순은 처음 단주에게 사양하였으나, 모든 신하들이 단주를 외면하고 순에게 모여들어 청하자 황제의 위에 올랐다. 순임금이 정사를 잘 다스리고 우에게 치수를 맡겨 성공하게 되자 자신의 아들인 상균이 자질이 모자란 것을 보고 우에게 선양하였다. 순임금은 말년에 계림과 우산을 순행하고 남쪽 지방을 순행하다가 호남성 창오현에서 병사하였다. 이때 순임금을 뒤따라 상수에 와있던 두 왕비 아황과 여영이 흘린 눈물로 인해 피가 얼룩진 것처럼 보이는 상비죽(湘妃竹)이 생겨났고, 두 왕비는 상부인(湘夫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의 사기의 기록이니 신빙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신화의 기록으로 전해질 뿐 유허나 유적은 아직까지 없다. 현인에게 선양하는 모습이나, 백성을 사랑하고 편안하게 살게 하는 애민정신을 얘기할 때 우리는 요순시대를 인용한다. 그러나 요가 순에게 선양하기 전 허유에게 먼저 후위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고 귀를 씻는 허유를 보고 소부는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며 상류로 올라간 설화 얘기도 전해진다. 신화를 검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요가 순에게 선양한 후 이십팔 년간이나 살아있었다는 것과 단주의 비통한 고사를 보면, 반드시 요가 순에게 평화로운 선양인가는 짙은 의심을 하게 된다. 우 역시 순에게 선양을 받았지만, 결국은 하왕조를 건설하여 세습한 것을 보면, 결국은 고대 사회에서 힘으로 겨룬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순이 말년에 남방 순행 중에 급사한 것 또한 정벌전에서 전사했을 개연성을 높이는 일이다. 중국사람들의 과장이나 허풍 또한 많은 윤색을 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순임금의 활동 무대가 주로 산동성 근방이고, 맹자가 적어놓은 대로 동이족의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의 고대사에도 매우 중요한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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