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명한 것을 일러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일러 도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도야자 불가수유리야 가리 비도야
도는 모름지기 잠깐이라도 떨어져서는 안된다. 떨어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시고군자계신호기소불도 공구호기소불문
이런고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바를 경계하고 삼가하며, 듣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莫見乎隱, 莫顯乎微.
막현호은 막현호미
숨겨져 있어도 드러나지 않을 수 없으며, 작은 것이라 해도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故君子愼其獨也.
고군자신기독야
그러므로 군자는 그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 해야 한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희로애락을 나타내지 않는 것을 일러 중이라 하고, 나타나더라도 그 중에 절제가 있으면 화라고 이른다.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중이란 천하의 큰 근본이며, 화는 천하에 통하는 도리이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화에 이르게 되면 천지는 제 위치를 찾게 되고, 만물이 자라게 된다.
(註1) 率(거느릴 솔), 須(모름지기 수), 臾(잠깐 유), 戒(경계할 계), 睹(볼 도), 恐(두려울 공), 懼(두려워할 구), 隱(숨을 은), 微(작을 미)
(註2) 중용의 첫 장으로 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지만 그 기본은 대체로 같다.
명은 령과 같고, 성은 곧 리이다 (명, 유령야, 성, 즉리야 命, 猶令也, 性, 卽理也).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변화시키고, 낳을 때 기로 형태를 만들고 이치를 또한 부여하였으니 명령과 같다 (천이음양오행화생만물, 기이성형, 이리역부언, 유명령야 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 氣以成形, 而理亦賦焉, 猶命令也). 이에 사람과 사물이 태어나고 각자 부여 받은 바 이치를 얻어 건 순, 오상의 덕을 삼았는데 이른바 성이다 (어시인물지생, 인각득기소부지리, 이위건순오상지덕, 소위성야 於是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솔은 따르는 것이고 도는 길이다 (솔, 순야, 도, 유로야 率, 循也, 道, 猶路也). 사람과 사물이 각자 그 본성을 따르면 날마다 쓰는 사물 간에도 각자 당연히 행해야 할 길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도이다 (인물각순기성지자연, 즉기일용사물지간, 막불각유당행지로, 시즉소위도야 人物各循其性之自然, 則其日用事物之間, 莫不各有當行之路, 是則所謂道也). 수는 구분하여 마름질하는 것이다 (수, 품절지야 脩, 品節之也). 성과 도가 비록 같지만 기를 받는 것이 혹간 다르므로 능히 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차등이 있다 (성도수동, 이기품혹리, 고불능무과급지차 性道雖同, 而氣稟或異, 故不能無過不及之差). 성인이 사람과 사물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구분하고 마름질하여 천하에 법을 세운 것이니 이것을 일러 교라고 한다 (성인인물지소당행자이품절지, 이위법어천하, 즉위지교 聖人因人物之所當行者而品節之, 以爲法於天下, 則謂之敎). 예, 악, 형, 정의 부류가 이것이다 (약예, 악, 형, 정지속시야 若禮, 樂, 刑, 政之屬是也).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하늘에서 나온 것임을 알지 못하고 성인의 가르침이 있는 것을 알지만 우리가 본래 있는 것으로 인해 마름질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개인지기지유성이불지기출어천, 지사지유도이불지기유어성, 지성인지유교이불지기인오지소고유자재지야 蓋人知己之有性而不知其出於天, 知事之有道而不知其由於性, 知聖人之有敎而不知其因吾知所固有自裁之也). 그래서 자사가 이를 처음 드러나게 하여 밝힌 것이니 한나라 동중서가 말한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고자사어차수발명지이동자소위도지대원출어천역차의야 故子思於此首發明之而董子所謂道之大原出於天亦此意也).
도란 날마다 쓰는 사물에 당연히 행해야 할 이치이고 모두가 성의 덕이고 마음에 있는 것이다 (도자, 일용사물당행지리, 개성지덕이구어심 道者, 日用事物當行之理, 皆性之德而具於心). 사물이면 당연히 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 없으니 소위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무물불유, 무시불연, 소이불가수유리야 無物不有, 無時不然, 所以不可須臾離也). 떨어질 수 있다면 외물이 되는 것이니 도가 아니다 (약기가리, 즉위외물이비도의 若其可離, 則爲外物而非道矣). 이 때문에 군자는 마음으로 항상 공경심과 두려움을 가지는 것이니, 비록 보거나 듣지 못해도 또한 감히 소홀히 하지 않는다 (시이군자지심상존경외, 수불견문, 역불감홀 是以君子之心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이런 까닭에 천리가 본래 그러함을 알고 잠깐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소이존천리지본연, 이불사리어수유지경야 所以存天理之本然, 而不使離於須臾之頃也).
은은 어두운 곳이다 (은, 암처야 隱, 暗處也). 미는 작은 일이다 (미, 세사야 微, 細事也). 독이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지만 내 혼자 알고 있는 곳이다 (독자, 이소불지이기소독지지지야 獨者, 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也). 말하자면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미세한 일도 자취는 드러나지 않지만, 기가 이미 움직였으니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해도 내 홀로 안다면 이는 천하의 일에 드러나 보이고 당연히 나타나는 것이 이보다 더하지 않다 (언유암지중, 세지미사, 적수미형이기즉이동, 인수불지이기독지지, 즉시천하지사무유저견명현이과어차자 言幽暗之中, 細微之事, 跡雖未形而幾則已動, 人雖不知而己獨知之, 則是天下之事無有著見明顯而過於此者). 이때문에 군자는 이미 언제나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이에 더욱 삼가함을 더하니 인욕이 장차 싹트려 할 때 막고 그것이 은미한 가운데 불어나고 커져서 도를 벗어남이 멀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시이군자기상계구, 이어차우가근언, 소이알인욕어장맹, 이불사기자장어은미지중, 이지리도지원야 是以君子旣常戒懼, 而於此尤加謹焉, 所以遏人欲於將萌, 而不使其滋長於隱微之中, 以至離道之遠也).
희로애락은 정이다 (희로애락, 정야 喜怒哀樂, 情也). 그것이 발하지 않으면 성이다 (기미발, 즉성야 其未發, 則性也). 치우치거나 기우는 바가 없는 것을 중이라 이른다 (무소편의, 고위지중 無所偏倚, 故謂之中). 발한 것이 모두 절도에 맞으면 정이 바른 것이니 어그러지는 바가 없으므로 화라고 이른다 (발개중절, 정지정야, 무소괴려, 고위지화 發皆中節, 情之正也, 無所乖戾, 故謂之和). 큰 뿌리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명한 성이니 천하의 이치가 모두 이것으로 인해 나오는 것이니 도의 몸체이다 (대본자, 천명지성, 천하지리개유차출, 도지체야 大本者, 天命之性, 天下之理皆由此出, 道之體也). 막힘이 없다는 것은 성을 따르는 것을 이른 것이므로 천하고금이 같이 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달도자, 순성지위, 천하고금지소공유, 도지용야 達道者, 循性之謂, 天下古今之所共由, 道之用也). 이것이 성정의 덕을 말하여 도를 떠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차언성정지덕, 이명도불가리지의 此言性情之德, 以明道不可離之意).
치는 미루어 넓히고 극대화하는 것이다 (치, 추이극지야 致, 推而極之也). 위라는 것은 그 장소에서 편안한 것이다 (위자, 안기소야 位者, 安其所也). 육이란 그 삶을 이루는 것이다 (육자, 수기생야 育者, 遂其生也).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에서 집약하여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이르면 조금도 치우치거나 기우는 것이 없다 (자계구이약지, 이지어정지중, 무소편의 自戒懼而約之, 以至於至靜之中, 無少偏倚). 그 지키는 것을 잃지 않으면 그 중을 극대화해서 천지가 자리잡게 된다 (이기수불실, 즉극기중이천지위의 而其守不失, 則極其中而天地位矣). 홀로 있을 때 삼가 하는 것에서 부터 정밀히 하여 사물을 응대하는 것까지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가르침이 없으면서 가는 곳마다 그렇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그 화를 극대화시켜 만물이 자라게 된다 (자근독이정지, 이지어응물지처, 무소차류, 이무적불연, 즉극기화이만물육의 自謹獨而精之, 以至於應物之處, 無少差謬, 而無適不然, 則極其和而萬物育矣). 대개 천지만물은 본래 나와 일체이니 내 마음이 바르면 천하의 마음이 또한 바르게 되고,나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가 순해진다 (개천지만물본오일체, 오지심정, 즉천지지심역정의, 오지기순, 즉천지지기역순의 蓋天地萬物本吾一體, 吾之心正, 則天地之心亦正矣, 吾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矣). 그러므로 그 효과가 이와 같아지게 된다 (고기효험지어여차 故其效驗至於如此). 이는 학문의 지극한 공부이고, 성인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밖에서 기다릴 것이 아니다 (차학문지극공, 성인지능사, 초비유대어외 此學問之極功, 聖人之能事, 初非有待於外). 도를 닦아 나가는 가르침 또한 그 가운데 있다 (이수도지교역재기중의 而修道之敎亦在其中矣). 이는 그 하나의 몸체와 하나의 쓰임새가 비록 움직임과 고요함이 다르지만 반드시 그 본체가 선 이후에 그 쓰임이 행해질 수 있으니 곧 그 실제에는 두 가지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기일체일용수유동정지수, 연필기체립이후용유이행, 즉기실역비유량사야 是其一體一用雖有動靜之殊, 然必其體立而後用有以行, 則其實亦非有兩事也). 그러므로 이에 합하여 말을 하여 윗 문장의 뜻을 끝맺은 것이다 (고어차합이언지, 이결상문지의 故於此合而言之, 以結上文之意).
(註3) 신독(愼獨)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군자가 홀로 있을 때 삼가 하는 것인데 자신만이 스스로를 보고 아는 것이니 그런 상태에서 삼가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군자만이 홀로 있을 때 스스로를 절제하며 삼가 할 수 있는 것일까? 홀로 있으면서 자신을 절제하고 스스로를 흐트러짐 없이 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절제력일 것이다. 무릇 보통 사람이 이런 경지를 깨닫는다는 것은 힘들 수 밖에 없다. 혼자 사색에 빠지거나 또는 게임에 열중하거나, 자신을 위한 취미활동을 하거나 여러 형태의 홀로 보내는 시간을 우리는 추구한다. 가족이나 사회에서 유리되어 혼자 있을 때 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아마 성인의 경지이거나 그와 유사한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이렇듯 자신을 관리하고 고매한 경지로 생각을 침잠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과 자연에 대한 호흡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중용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혼자서도 삼가 할 능력이 있다면 그는 정말 성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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