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자왈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같이 배울 수는 있지만 함께 도에 나아갈 수는 없고,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가여적도 미가여립 가여립 미가여권
같이 도에 나아갈 수는 있지만 함께 우뚝 설 수는 없고, 같이 선다고 해도 함께 입신양명 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註1) 適(맞을 적)
(註2) 가여란 더불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여자, 언기가여공위차사야 可與者, 言其可與共爲此事也). 정자가 말하길 같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할 바를 안다는 것이다 (정자왈, 가여공학, 지소이구지야 程子曰, 可與共學, 知所以求之也). 같이 도를 안다는 것은 갈 곳을 안다는 것이며 (가여적도, 지소왕야 可與適道, 知所往也), 같이 설 수 있다는 것은 뜻이 독실하고 확고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여립자, 독지고집이불변야 可與立者, 篤志固執而不變也). 권은 저울의 추이니 경중을 아는 도구이다 (권, 칭추야, 소이칭물이지경중자야 權, 稱錘也, 所以稱物而知輕重者也). 같이 권도를 행할 수 있는 것은 능히 경중을 헤아려 도의에 부합하는 것을 말한다 (가여권, 위능권경중, 사합의야 可與權, 謂能權輕重, 使合義也).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당체지화 편기반이 기불이사 실시원이
‘산앵도꽃 화사하니 바람에 춤을 추네. 어찌 그대가 그립지 않으랴만 계시는 곳 멀기만 하네’라는 시를 읽으시고,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자왈 미지사야 부하원지유
공자께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거늘 어찌 멀리 있다고만 하는가.’라고 하셨다.
(註1) 唐(당나라 당), 棣(산앵두나무 체), 偏(치우칠 편), 豈(어찌 기)
(註2) 당체는 산앵두이다 (당체, 욱리야 唐棣, 郁李也). 편은 진서에 편으로 되어있다 (편, 진서작편 偏, 晉書作翩). 그래서 반 또한 편과 같이 너울거린다는 뜻이다 (연즉반역당여번동, 언화지요동야 然則反亦當與翻同, 言華之搖動也). 이는 어조사이다 (이, 어조야 而, 語助也). 공자가 시의 말을 빌려와 그 뜻을 반박한 것이고 전편의 인원호재의 뜻과 같다 (부자차기언이반지, 개전편, 인원호재지의 夫子借其言而反之, 蓋前篇, 仁遠乎哉之意).
(註3) 당체(唐棣)는 산앵도꽃나무이다. 이 시를 읽고서 공자는 인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실천하기에는 가까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을 살면서 생활화 할 것을 공자는 계속 가르치고 있다. 인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멀리 있는 고차원의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은 사는데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예와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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