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畏於匡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자외어광왈 문왕기몰 문부재자호
공자가 광읍에서 위란에 처하여 말씀하시길, ‘문왕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문화는 여기 내게 전해 남아 있지 않느냐?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천지장상사문야 후사자부득여어사문야
하늘이 이 문화를 없애려고 한다면 후대에 죽을 나같은 사람이 이 문화에 동참하여 얻지를 못할 것이고,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천지미상사문야 광인기여여하
하늘이 이 문화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면 광읍 사람들이 나를 어찌 하겠느냐?’고 하셨다.
(註1) 畏(두려워할 외), 匡(바를 광), 旣(이미 기), 沒(잠길 몰), 玆(검을 자)
(註2) 외(畏)는 경계하는 마음을 말한다 (외자, 유계심지위 畏者, 有戒心之謂). 광은 지명이다 (광, 지명 匡, 地名). 사기에 양호가 광읍에서 포학한 짓을 하였었다 (사기운, 양호증폭어광 史記云, 陽虎曾暴於匡). 공자의 용모가 비슷하여 광읍 사람들이 공자를 포위했다 (부자모사양호, 고광인위지 夫子貌似陽虎, 故匡人圍之). 도가 나타나는 것을 문이라 한다 (도지현자위지문 道之顯者謂之文). 대개 예약제도를 이른다 (개예악제도지위 蓋禮樂制度之謂). 도라고 하지 않고 문이라 하는 것은 겸사이다 (불왈도이왈문, 역겸사야 不曰道而曰文, 亦謙辭也). 자는 공자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자, 차야, 공자자위 茲, 此也, 孔子自謂).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공자께서 스스로 뒤에 죽을 사람이라한 것이다 (마씨왈, 문왕기몰, 고공자자위후사자 馬氏曰, 文王旣沒, 故孔子自謂後死者). 하늘이 만약 그 문물제도를 없애려 했다면 반드시 내게 이 문에 참여치 않도록 하였을 것이다 (언천약욕상차문, 즉필불사아득여어차문 言天若欲喪此文, 則必不使我得與於此文). 지금 내게 이 문이 허용됐으니 이는 하늘이 이 문을 없애려 것이 아니다 (금아기득여어차문, 즉시천미욕상차문야 今我旣得與於此文, 則是天未欲喪此文也). "하늘이 이 문을 없려 하지 않는데 광읍 사람들이 나를 어찌 하겠느냐?"는 말씀이니 반드시 하늘의 뜻을 어겨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라는 얘기다 (천 기미욕상차문, 즉광인기나아하? 언필불능위천해기야 天旣未欲喪此文, 則匡人其柰我何? 言必不能違天害己也).
(註3) 광읍(匡邑)은 노나라의 양호(陽虎)가 침공하여 해를 입힌 마을이었다. 우연히 공자가 광읍을 지날 때 공자를 수행했던 제자 안각(顔刻)은 그 전에 양호를 수행했던 적이 있었기에 광읍을 지날 때 마차를 몰면서 공자에게 그 때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광읍 사람들이 공자를 양호로 오해하여 구금하고 해치려 하였다. 당시의 상황은 전국시대 제후국간의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였다. 광읍 사람들이 공자를 물리적으로 구금하여 해치려 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양호는 다른 나라에서 노나라로 망명와서 노나라의 삼환의 가문 중 세력가인 계손씨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계손씨와 대립하고 있던 공자와 갈등관계에 있었다. 형식적인 노나라 군주였던 노정공을 설득하여 정나라를 정벌하기로 군대를 동원한 양호는 도중에 지나게 되는 광읍성에 길을 요구하였고 광읍성에서 이를 거부하자 침공하여 무차별 살륙을 자행하였다. 광읍성 주민들이 양호의 군대에게 이를 갈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뒤에 위(衛)나라를 떠나 송(宋)나라로 가던 공자 일행이 광읍을 지날 때 공자의 수레를 몰던 제자 안각이 공자에게 하는 얘기를 듣고 마침 기골이 장대한 공자를 양호로 오인한 광읍성 주민들이 공자일행을 구금하여 처단하려 한 것이다. 공자는 구금되어 있으면서 태연히 거문고를 연주하였고 나중에 위나라에서 사신이 와서 오해를 풀고 나서야 구금이 풀렸다. 이때 구금당하여 물리적인 폭력을 겪었을 때 공자가 한 말이다. 양호와 공자는 참으로 악연으로 얽혀진 관계였음을 논어를 통해 알 수 있다. 양호는 사실상 배신(陪臣), 즉 제후의 신하가 아닌 대부의 신하로서 처음에는 계환자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공자가 어머니 상중임에도 계환자의 연회에 참석하려고 하였지만 그는 공자의 비천함을 이유로 내쫒았다. 후일 공자가 제자를 교육하면서 명망을 얻게 되고 양호가 계환자를 능가하는 권력을 잡자 양호는 공자를 초빙하여 함께 일할 것을 권하였으나 공자는 이를 거절하였다. 양호는 결국은 계환자를 구금하여 거꾸로 계환자의 충성을 서약 받은 후 대부 이상의 횡포한 권력을 휘둘렀다. 이 때 양호는 노정공을 압박하여 정나라를 칠 군대를 출동하게 하였는데 광읍을 지나면서 수많은 광읍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양호는 더욱 야심을 품고 삼환의 가문을 쓸어버리고 자신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공산불뉴와 손잡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삼환의 반격으로 양호는 패퇴하였고 노나라의 보옥과 활을 탈취하여 제나라로 망명하였다. 이후 양호는 다른 나라로 도망갔고 다시는 노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양호와 골격과 인상이 비슷한 공자를 보고 광읍 사람들이 구금하여 위해를 가하려 하였으나 위영공의 부인 남자가 사신을 보내 그 오해를 풀었고 풀려난 공자 일행은 다시 위나라로 되돌아 갔다. 이 광읍의 변은 공자가 주유열국에서 겪은 환난의 하나로 이후에도 공자는 많은 신고를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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