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中庸之爲德也,
자왈 중용지위덕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는 중용의 덕을 행하는 것, 그것이 지극한 것이다.
其至矣乎! 民鮮久矣.
기실어호 민선구의
그러나 백성들은 중용을 취하는 것이 드물고 중용의 도를 폐한 것이 오래되었구나.’라고 하셨다.
(註1) 庸(쓸 용), 鮮(고울 선, 드물다), 久(오랠 구)
(註2) 중(中)은 "모자람이나 지나침이 없는 조화"(위중화 謂中和)를 의미한다. 용(庸)은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한다.
(註3) 중용(中庸)은 흔히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조화로움을 말한다. 중용의 첫머리에는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도야자 불가수유리야 가리 비도야), 즉 "하늘의 천명을 일러 성이라 하니 그 천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도를 수양하는 것을 일러 교라고 한다. 도는 잠깐이라도 떠나서는 안되며 떠나는 것은 도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범인들이 이런 중용의 지극한 경지를 행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공자가 말한 중용의 도는 물론 선왕들, 예컨대 요와 순임금 같은 선왕지도를 의미하고, 이를 당시의 사람들이 실행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 것이겠지만, 먹고 살기에 바쁜 사람들에게 선왕의 중용의 도가 그리 쉽게 실행될 수 있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공자가 백성들에게만 이런 중용의 도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치자들의 공통된 심리일 것이고 이런 논리라면 유가의 학문이 치자의 정통학문으로 우대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자공왈 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자공이 ‘널리 백성에게 베풀고 능히 민중을 구제한다면 어떠합니까? 가히 인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인을 행한다고만 하겠느냐? 반드시 성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요순기유병제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요와 순임금도 그것을 걱정하였느니라. 어진 사람이란 자신이 나서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자신이 이루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이루게 한다.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능히 가까이 비유하여 이를 취한다면 가히 인의 경지라고 이를 수 있다.’라고 대답하셨다.
(註1) 濟(건널 제), 猶(오히려 유), 取(취할 취), 譬(비유할 비)
(註2) 군주는 널리 은혜를 베풀 수 있고, 백성을 환난에서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요, 순 같은 성인들도 어려워 근심하였다 (군능광시은혜, 제민어환난. 요, 순지성, 유병기난 君能廣施恩惠, 濟民於患難. 堯, 舜至聖, 猶病其難). 자공이 인자(仁者)의 행함에 대하여 말하였다. 쉽게 비유하자면, 남에게 베풀고, 용서를 하는 것이다 (경위자공설인자지행. 방, 도야. 단능근취비어이, 개서기소욕이시지어인 更為子貢說仁者之行. 方,道也. 但能近取譬於已, 皆恕己所欲而施之於人).
(註3) 인이란 참으로 쉽고도 어렵다. 자신보다 남을 내세우게 배려할 수 있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남이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이러한 배려의 마음이 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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