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5편 공야장(公冶長): 안평중선여인교 구이경지 #11

몽그림 2022. 7. 8. 06:08

晏平仲善與人交久而敬之.

자왈    안평중선여인교    구이경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평중은 사람을 사귀기를 잘하였고, 오랫동안이라도 존경하였다.’라고 하셨다.

 

(1) (늦을 안), (버금 중)

 

(2) 안평중(晏平仲)은 제나라 재상(宰相)으로 안자(晏子) 불리는 안영(嬰) 말한다. 평(平)은 시호(諡號)이고 중(仲) 항열이다.

 

(3) 안평중은 외교전에 뛰어나고 백성을 사랑하며 충성심이 높은 현실정치인이었다. 그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안자춘추(晏子春秋)가 있다안평중은 제나라에서 경공을 비롯한 세명의 군주를 모셨고,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를 현실적인 감각으로 조율하였다안평중은 뛰어난 정치가이고, 외교가이며, 학자이다. 안평중이 제경공이 공자를 대부로 등용하는 것을 막았지만 공자는 안평중을 정치인뿐만 아니라 군자의 학문을 하는 선비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춘추전국시대에 제후국의 재상으로 안평중에 비견할 만한 정치인은 별로 없다. 그의 사상은 인의(仁義), 평화(平和), 애민(愛民) 그리고 기모(奇謀)로 압축할 수 있다그는 대단한 실천적 용기도 보여주었으며 자국의 안전과 백성의 이익을 위해서 실용적인 외교평화를 추구하였고, 뛰어난 협상술로 자국의 이익을 지켜냈다. 유명한 귤화위지(橘化爲枳-남쪽의 귤을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의 고사는 그로 인해 탄생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나라인 제나라를 위해 충실한 재상의 임무를 다하였고 주변 제후국과의 협상에서도 자기 나라의 국격을 손상하지 않았다. 안평중은 당시의 손무, 오자서, 공자를 비롯한 위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 걸출한 정치인이었다.

 

 

臧文仲居蔡山節藻梲何如其知也?

자왈    장문중거채    산절조절    하여기지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장문중은 점을 치는 채지방의 특산물인 거북등가죽을 보관하는 거소를 만들고 지붕에 산 무늬의 두공과 물풀 무늬의 동자 기둥을 쓰니 어찌 그가 지혜롭다 하리오?’라고 하셨다.

 

(1)  (착할 장), (거북 채), (말 조), (벗을 탈,쪼구미,날카로울 예), 山節(산절-산을 조각한 두공, 枓栱은 크게 지은 목조건물의 기둥과 지붕사이의 구조물), 藻梲(조절-물풀 무늬를 그린 동자기둥)

 

(2) 채(蔡)는 점을 칠 때 사용하던 채나라 지방에서 나는 거북을 말한다 (채, 국군지수구, 출채지, 인이위명언, 장척유이촌, 거채, 참야. , 國君之守龜, 出蔡地, 因以為名焉, 長尺有二寸, 居蔡, 僭也). 장문중은 노나라 대부 장손진(孫辰)이고, 문(文)은 시호이며 중(仲)은 항열이다 (장문중, 노대부장손진, 문, 시야 臧文仲, 魯大夫臧孫辰. , 諡也). 산절(山節)은 절(節)을 말하고 두공이다 (이야, 각루위산형, 고운산절야 栭也, 刻鏤為山形, 故云山節也). 조절(藻梲)수조류 말을 말한다 (조, 수초유문자야 , 水草有文者也). 절(梲) 서까래위의 짧은 기둥이다 (양상단주야. 화위조문, 고운조탈 樑上短柱也. 畫為藻文, 故云藻梲). 이런 무늬의 기둥은 사치스런 것이다 (차언기사치야 此言其奢侈也)

 

(3) 장문중은 공자가 태어나기 육십년 전에 노나라 정경을 지낸 사람인데 노나라에 큰 흉년이 들자 옥기를 가지고 제나라에서 식량을 빌려오기도 하였다. 그는 채구갑(蔡龜甲-점을 치는 채나라 산물인 큰 거북 등껍질)을 관리하기 위해 건물을 지었다공자는 이런 미신 점복을 위해 화려한 집을 짓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공자는 장문중에게 삼불인, 삼불지(三不仁, 三不知)가 있다고 얘기 하였다장문중이 정경이 지위에 있을 때는 삼환이 발호하기 전이었으며, 공자는 장문중이 미신을 신봉하고 사치스런 건물을 지은 것을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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