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5편 공야장(公冶長): 부자지언성여천도 불가득이문지 #9

몽그림 2022. 7. 6. 01:43

子貢曰夫子之文章可得而聞也,

자공왈    부자지문장    가득이문야

자공이 말하길, ‘선생님의 글은 가히 보고 이해할 수 있지만,

 

夫子之言性與天道不可得而聞也.

도      불가득이문지

선생님의 하늘의 도에 관한 본성에 대한 말씀은 가히 듣고 깊이 이해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1) (글 장), 不可 (불가-~할 수 없다)

 

(2) 사용하는 글에 대해서는 보고 이해할 수 있지만 (문채형질저견, 가이이목순 彩形質著, 以耳目), 심오하게 깊어서 (심미 深微이해하기 힘들었다는 뜻이다 (고불가득이문야 不可得而聞也). 성(性)이란 나면서부터 받은 성품이고 (인지소수이생야 之所受以生), 천도(天道)란 사물의 근본 원리이며 날로 새로운 도리(원형일신지도 亨日新之)이다.

 

(3) 자공에 대한 평가는 사기에 나오는 노국존 제국란 오국망 진국강 월국패(魯國存 齊國亂 吳國亡 晉國强 越國覇)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외교 협상가로서 능력이다제나라의 대부 전상이 노나라를 침략하려고 군대를 출동하자 공자의 명을 받은 자공이 제나라를 찾아가 군대를 오나라로 돌리게 하였고 오나라에 부차에게 가서는 월나라와 평화협상을 하고 제나라와 싸워 패권을 차지할 것을 설복하였다. 그런 다음 월나라 구천에게는 오나라를 지원하는 술책을 쓰고 나라를 강력하게 한 다음 오나라를 칠 것을 설복하고 진나라와는 오나라에 대항하여 패권싸움을 하도록 다국 협상을 하였다이러한 자공의 외교협상으로 노나라는 제나라로 부터 침공을 방지하여 나라를 지켰고, 오나라는 제나라를 제압하고 패자가 되었으나 후일 월나라의 공격으로 망했고, 진나라는 오나라와의 견제와 전쟁으로 나라가 강력해지게 되었다. 월나라왕 구천은 자공의 유세에 따라 오나라를 정복하여 춘추 오패의 하나가 되었다당시의 제후국간의 무력충돌과 경쟁을 교묘하고 현란한 협상력으로 조정한 자공의 능력은 경외스럽기 조차 하다이런 자공이 스승인 공자를 위해 노력한 것을 보면 참으로 실천하는 경세가의 풍모를 보인다후세 사람들이 자공이 안회에 비해 학문적 성취도가 낮다고 함부로 폄훼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자공이 공자에게 자신이 아름다운 구슬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간직해야 하는지 또는 비싸게 팔아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공자는 당연히 팔아야 한다고 얘기한다공자는 변하지 않고 배우고 실천하는 자공을 사랑스러워 한 것으로 보인다공자의 삼년 복상을 치른 뒤의 행적이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스승인 공자가 죽을 때 사야, 왜이리 늦었느냐?’고 말한 이유를 알게 된다.

 

 

路有聞未之能行唯恐有聞.

자로유문    미지능행    유공유문

자로는 들은 바가 있으나 아직 실행하지 못하였음에도 오직 또 다시 새로운 가르침을 들을까 그것을 걱정하였다.

 

(1) (오직 유), (두려울 공)

 

(3) 자로와 공자는 인간적인 신뢰가 있었던 관계였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비록 자로가 학문의 터득이나 공자가 설파한 인의와 도에 대한 이해를 안회나 자공과 같이 하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다만 공자도 자로가 옆에 있으니 다른 사람이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고 말한 것을 보면 자로는 적어도 의협심이 있는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자로가 위나라 공회의 정변에서 죽을 수도 있는 성으로 자고가 말렸음에도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항변하는 모습이나 죽음을 맞으면서 갓끈을 고쳐매는 모습은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직함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공자가 용맹한 것은 공자 자신을 뛰어넘지만 자로의 재능이 뛰어나지 못했음을 탓해을 망정 자로는 공자를 위해 최대한 자기 희생을 하면서 받들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자로를 야단치는 공자의 모습을 보면 스승이라기 보다는 형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자로의 우직함은 삼환의 횡포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공산불요의 요청에 공자가 움직이려 하자 격열히 제지하였고, 위영공의 부인 남자를 만나면서 공자는 자로에게 자신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노라고 변명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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