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5편 공야장(公冶長): 오사지미능신 #4

몽그림 2022. 7. 1. 14:14

使漆彫開仕對曰吾斯之未能信子說.

자사칠조개사    대왈    오사지미능신    자열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에 나아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저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 자신감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기뻐하셨다.

 

(1) (옻 칠), (새길 조), (벼슬할 사), (말씀 열=)

 

(2) 칠조개(漆雕開) 공자의 제자이며 성은 칠조(漆雕)이고 이름은 계(啓), 자는 자개(子開)이다. 

 

(3) 한비자는 칠조개는 의론할 때 기색을 굽히지 않았고 한 눈을 팔지 않았고 잘못된 것은 노비에게도 굽히고,행동이 바르면 제후에게도 성을 내고 세상 군주가 철렴하게 하면 예로써 대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칠조지의 불색뇨 불목도 행곡즉위어장획 행직즉노어제후 세주이위렴이례지 漆雕之議 不色撓 不目逃 行曲則違於臧獲 行直則怒於諸侯 世主以爲廉而禮之). 칠조개는 학행이 뛰어나고 강직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스승인 공자가 권유하였지만 벼슬에 나서기를 사양하고 학문연구에 힘썼다. 공자 사후에 여러 유파로 갈려질 때 칠조파의 유가로 발전하였다후한명제 때 공묘에 배향되고 송나라 진종때 평여후에 추봉되었다칠조개는 공자와 열한살 차이가 나는 초기의 제자인 듯 한데 그리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공자 사후 8유파중 하나를 형성할 정도로 학문연구에 일가를 이룬 것으로 보이는데 송대 이후에 그 학맥이 이어지지 않았다칠조개는 자로와 같은 시기에 협객에서 공자의 제자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초기 공자학단이 형성될 때 참여함으로써 공자류파의 학단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공직에 나갈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는 칠조개의 모습은 오늘날 어리석은 인간들에 비해 오히려 고집과 신선함을 준다.

 

 

道不行乘桴從我者其由與.  

자왈    도불행    승부부어해    종아자기유여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가 실행되지 않아서 작은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간다면 나를 따르는 사람은 유이리라.’고 하셨다.

 

子路聞之子曰由也好勇過我無所取材.

자로문지    자왈    유야호용과아    무소취재

자로가 듣고 기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유는 용맹을 좋아하여 나를 능가하지만 뗏목을 만들 재목을 구할 데가 없구나.’라고 하셨다.

 

(1) (탈 승), (마룻대 부), (뜰 부), (날랠 용)

 

(2) 부(桴)는 대나무 뗏목을 엮을 때 큰 나무를 벌이라 하고 작은 나무를 부라고 한다 (편죽목대자왈벌, 소자왈부 竹木大者曰, 者曰). 유(由) 자로의 이름으로 친근하게 부를 때는 자 대신에 이름을 부른다.

 

(3) 자로와 공자의 관계는 사제지간이긴 하지만 공자와의 관계를 보면 거의 심우와 같은 정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공자의 학문을 배운 많은 제자들은 자로,  염옹, 염백우를 비롯한 동생뻘이 되는 제(弟)그룹의 선진군(先進群)과 증자, 자장, 자유등 아들뻘(子) 되는 후진군(後進群)으로  나누어 진다. 제(弟)그룹과 자(子)그룹을 합쳐서 제자라고 하였다. 자로는 의협객 출신으로 공자학단의 선진군의 대표적인 제자이며 공자와 아홉살 차이로 공자는 자로를 거의 동생처럼 대우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자로 또한 공자가 위영공의 왕비인 남자(南子)를 만나자 공자에게 대들기도 하고 공산불요의 요청을 수락하려는 것을 저지하기도 하였다후일 자로가 위나라 공회의 난으로 처참하게 죽자 공자는 비통해 하며 좋아하던 젓갈을 쏟아버리고 자로의 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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