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제5편 공야장(公冶長): 자위자천 군자재약인 #2

몽그림 2022. 6. 29. 02:48

謂南容邦有道不廢邦無道免於刑戮以其兄之子妻之.

자위남용    방유도    불폐   방무도    면어형     이기형지자처지

공자께서 남용을 평하시기를 나라에 도가 있다면 그는 관리로 등용되어 버림받지 않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겸손한 처신으로 형벌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공자는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 보냈다.

 

(1) (얼굴 용), (나라 방), (폐할 폐), (면할 면), (죽일 )

 

(2) 제자 남용의 어진 행실을 칭찬한 것이다 (자평론제자남용지현행야 評論弟子南容之賢行也). 만약 도가 있는 나라였다면 훌륭한 관리가 되었을 것이고 도가 없는 나라였다면 겸손한 처신을 하니 위난에 처하지 않고 형벌로 살육당하는 욕을 보지 않을 것이다 (약우방국유도, 즉상득견용재관, 불피폐기. 약우방국무도, 즉필위행언손, 이탈면어형벌육욕야 遇邦國有, 常得見用在, 被廢. 遇邦國無, 必危行言, 脫免於刑罰戮辱)남용은 노인(魯人)이며 공자의 제자이며, 성은 남궁(南宮), 이름은 괄(括)이고 자는 자용(子容)이다. 정주(鄭注)에 따르면 남용은 남궁(南宮縚)이고 맹희자의 아들인 남궁(南宮閱)로써 맹희자가 죽을 때 공자에게 배우라고 유훈하였다고 한다.

 

(3)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시씨에게서 딸 아홉을 얻었고, 첩을 얻어 아들 맹피를 얻었으나 선천적인 족병(足病)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숙량흘이 열여섯살의 안씨녀 징재와 야합하여 공자를 얻었다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이 당시 육십이 넘어선 나이에 어린 처녀와 들판에서 교접하여 공자를 낳았다고 사기를 해석하고 있다또다른 측에서는 남자의 양도가 팔의 곱인 육십사세에 끊어지고 여자의 음도는 칠의 곱인 사십구세에 끊어지므로 이런 특이한 결합을 야합이라고 한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공자세가는 공자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서인 만큼 공자의 가문이나 출생과 행적을 기준으로 할 수 있는 기록이다. 사생아 또는 서자로써 공자라는 인간에 대한 흥미를 가지는 것은 논점과 독서에서 그리 비중을 둘 일은 아니다다만 공자를 중니(仲尼)라고 하였으니 이는 둘째 아들이라는 의미이고 맹피는 숙량흘의 맏아들이니 맹피(孟皮)라고 이름지어진 것이다공자의 아버지는 숙량흘이니 셋째 아들인 셈이다. 중국의 이름을 보면 맏아들은 백(伯)이나 맹(孟), 둘째는 중(仲), 셋째는 숙(叔), 막내는 계(季) 이름에 썼다. 자로의 이름이 계로(季路)이니 자로는 막내아들인 것이다당시 공자의 이복형 맹피가 죽은 후 공자가 질녀의 혼사를 시킨 것이다.

 

 

子謂子賤君子哉若人魯無君子者斯焉取斯?

자위자천    군자재약인     노무군자자    사언취사

공자께서 자천을 평하기를 군자답다, 이 사람은. 노나라에 군자들이 없었다면, 이 사람은 어디서 군자다움을 취하였겠는가?’하셨다.

 

(1) (천할 천), (이 사)

 

(2) 노나라에 군자가 많으니 자천이 군자의 학행을 배운 것이다 (노다군자, 고자천득학위군자야 多君, 子賤得學為君子)자천은 공자의 제자이며, 성은 복(宓), 이름은 부제(不齊)이며 자천(子賤)그의 자이다

 

(3) 복자천은 두보가 복자는 거문고를 켜며 평화롭게 다스리며읍재로 소일하였다고 하였고 (복자탄금읍재일 子彈琴邑宰), 공자는 참군자로다 라고 칭찬한 공자의 말년 제자이다노애공 시절 단보(父)현령으로 간 복자천은 공자가 벼슬하여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물어보자 잃은 것은 없으며 예전에 배운 것을 실천하여 날마다 학문이 늘었고, 적은 녹봉을 아껴 친척을 도와 더 친밀해졌으며 바쁜 중에 시간을 내서 친구를 만나니 더욱 가까워져서 이들 세 가지를 얻은 것입니다 라고 답하였다자신의 조카인 공멸이 벼슬을 하여 일이 바빠 공부를 하지 못하고 녹봉이 적어 친척을 돌보지 못하며 공무가 바빠서 친구들을 만나지 않아 관계가 멀어졌다고 불평하는 얘기를 듣고 실망하고 있던 공자는 복자천의 대답을 듣고 참으로 군자로구나 하고 칭찬한 것이다또 자신의 제자인 무마기를 보내 단보의 정치를 살펴본 즉 읍성민들이 질서를 잘지키고 심지어 어부들이 잡았던 작은 고기를 놓아주는 것을 보고오자 그를 군자로 대접하였다또 노애공의 신하를 동행한 복자천이 그들에게 기록을 시킨 후 팔을 흔들고 밀어 흔들어 기록한 글씨가 엉망이 되게 한 다음 크게 꾸짖자 따라왔던 관리들이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애공에게 돌아가 고하였다그러자 애공은 크게 깨닫고 단보읍성은 더 이상 불필요한 간섭을 없앨테니 복자천의 의지대로 다스릴 것을 명하였다복자천의 고사는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으로 많이 인용된다. 현재도 중앙의 관리들이 현지의 실상을 모르면서 탁상행정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지나친 간섭으로 지방행정을 문란하게 만드는 것은 마땅히 경계하고 개선되어야 할 일이다회사조직에서도 부하직원에게 부여된 임무에 대해 결론이 나기도 전에 간섭하고 진행을 왜곡시키는 사례는 많다후일 위문후의 스승이 된 자하의 제자 중 서문표와 같은 관리도 공자의 정신을 실천한 관리인데 복자천의 행동과 서문표의 행동에서 우리는 조직관리자의 덕행과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다공자는 노나라의 군자들에게서 학행을 배운 복자천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는 노나라의 공자학단 그룹의 위상과 그러한 군자를 많이 배출한 공자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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