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논어 (論語) - 태사공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 #13

몽그림 2022. 4. 25. 01:23

子學鼓琴師襄日不.

공자학고금사양자      심일불진

공자가 북과 비파를 사양자에게 배웠으나 열흘 동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襄子, 可以.

사양자왈   가이익의

사양자가 이제 다른 것을 배우시지요.’라고 하였다.

 

, 已習其曲得其數.

공자왈    구이습기곡의    미득기수야 

공자는 '구가 그 곡조는 익혔지만 그 음계는 터득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有閒, , 習其, 以益, 未得其志.

유간  왈   이습기수   가이익의    공자왈   구미득기지야

얼마 지나서 사양자가 다시 '이미 그 음계를 익혔으니 다른 것을 하시지요.'라고 하자, 공자는 '구가 그 담긴 뜻은 터득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有閒, , 習其, 以益, 未得其為人.

유간  왈   이습기지   가이익의    공자왈   구미득기위인야

다시 얼마 지나서 '이제 뜻을 터득하셨으니 다른 것을 더 하셔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자공자는 '구가 곡을 만든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有閒, , 所穆然深思焉, 有所怡然高望而遠志. ,

유간  왈    유소목연심사언   유소이연고망이원지언    왈

얼마 지나 조용한 모습으로 깊이 생각하고 또 즐거운 마음으로 원대한 뜻을 높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得其為, 然而, 然而, 如望, 王四, 非文王其誰能為此也!

구득기위인   암연이흑   기연이장   안여망양   여왕사국    비문왕기수능위차야

'구가 곡을 만든 사람의 위인됨을 알았습니다피부가 검고 키는 큽니다안광이 빛나 멀리 내다볼 수 있으니 사방의 나라를 다스리는 듯하니 문왕이 아니라면 능히 누가 지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襄子辟席再, , 蓋云文王操.

사양자피석재배  왈 사개운문왕조야

사양자가 일어나 재배하며 스승께서 문왕조라고 일러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 문왕조는 문왕이 작곡했다는 거문고 곡이다.

사양자는 위나라 태사로 음악을 관장하는 악사장이었다.

 

 

子既不得用於衛, 將西見趙簡子.

공자기불득용어위    장서견조간자

공자가 위에서 등용되지 못하자 서쪽으로 가서 조간자를 보려 하였다.

 

至於河而聞竇鳴犢, 舜華, 之死也, 臨河歎曰,

지어하지문두명독    순화  지사야   임하이    탄왈

황하에 이르렀을 때 두명독과 순화의 죽음을 듣자 강둑에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 洋乎!  丘之不濟, 也夫! 

미재수   양양호     구지불제차   명야부

'아름다운 강물이여넓고도 양양하구나구가 이 강을 건너지 않는 것도 천명이로다.'라고 하였다.

 

貢趨而進, 問何謂也?

자공추이진왈    감문하위야

자공이 달려 나와 묻기를 '지금 무슨 말씀입니까?'고 물었다.

 

, , 舜華, 國之賢大夫簡子未得志之, 此兩人而后從

공자왈   두명독  순화   진국지현대부야     조간자미득지지시    수차양인이후종정 

공자는 '두명독과 순화는 진나라의 어진 대부였다조간자가 뜻을 펴지 못했을 때 그는 오직 이 두 사람의 말에 따라 정치를 하였다.

 

其已得, 之乃從. 聞之, 胎殺夭則麒麟不至,

급기이득지    살지내종정   구문지야   고태살요즉기린불지교

마침내 그가 조나라에 치세를 이뤄 뜻을 이루자 그는 두 사람을 죽이고 정사를 보고 있다. 구가 들은 바로는 배를 갈라 태아를 죽이면 기린이 도성 밖에 이르지 않고,

 

澤涸漁則蛟龍不合陰, 巢毀卵則鳳皇不則?

갈택후어즉교룡불합음양     부소훼란즉봉홯불상    하즉

연못을 마르게 하여 고기를 잡으면 교룡이 구름과 비를 일으켜 음양의 조화를 이루려 하지 않는다둥지를 뒤집어 알을 깨뜨리면 봉황이 날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君子諱傷其類. 鳥獸之於不義也尚知辟況乎丘哉!

군자휘상기류야    부조수지 어불의야 상지피지    이황호구재 

군자는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상하는 것을 꺼린다날짐승과 들짐승도 의롭지 않은 것을 피하거늘 하물며 내가 그것을 모르랴?'고 하였다.

 

還息乎陬, 為陬, 反乎, 主蘧伯玉.

내환식호추향  작위추조  이애지  이반호위  입주거백옥가

공자가 되돌아가 추향에서 쉬면서 추조를 지어 두 사람을 애도하였다다시 위나라로 돌아와 거백옥의 집에 머물렀다.   

 

() 춘추시대를 끝내고 전국시대로 접어드는 것은 조간자의 아들인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위씨와 한씨와 함께 진나라를 삼가분진(三家分晉)하면서부터이다조간자는 진경공 시절에 범씨, 중행씨, 지백과 위치, 한불녕과 함께 육경으로 진나라 정치를 주물렀다. 진나라 공실이 힘이 약하여 여섯 대부의 눈치를 보는 신세로 전락하였다이 중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지씨가의 지백은 범씨와 중행씨를 축출하고 그들의 땅을 조양자, 위환자, 한강자와 나누어 가졌다지백은 이어서 남은 삼가에 대해 땅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위환자와 한강자는 지백의 요구에 땅을 내어놓고 군사를 내어 지백과 함께 조양자를 공격하였다조양자는 조간자의 서자로 그 재주가 비상하여 조간자가 적실의 아들을 제쳐두고 후계로 삼았는데, 지백은 정나라를 토벌할 때 종군한 조양자를 심하게 매질하고 조간자에게 후계의 자리를 박탈하라고 요구하였다.그러나 조간자는 이를 거절하였다. 지백이 월등한 군사력과 한강자와 위환자를 끌어들여 조양자를 공격하였으나 삼 년 동안 성공하지 못했다궁벽한 진양땅으로 내몰린 조양자는 한강자와 위환자를 비밀리에 설득하여 지백을 역공하여 오히려 가장 강력한 지백을 포로로 잡아 수모를 준 다음 잔인하게 죽이고 그의 땅을 위환자와 한강자와 삼분하였다이 때 조양자가 위환자와 한강자를 설득한 것이 순망치한이다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설득한 한과 위를 설득한 조양자는 지백을 멸족시키고 지백의 해골에 옻칠을 하여 자신의 요강으로 썼다지백의 신하로 살아남은 예양은 조양자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자객이 되어 조양자를 죽이려 하였으나 그 때마다 발각되어 실패하고 목숨을 끊는다. 예양은 자신을 버리고 의리를 지킨 충의로운 자객으로 사기 자객열전에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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