范魯公質爲宰相, 從子杲嘗求奏遷秩.
범노공질위재상 종자고상구주천질
범노공 질이 재상이 되었는데, 조카인 고가 한번은 관직을 올려주기를 부탁하였다.
質作詩曉之. 其略曰,
질작시효지 기략왈
범질이 시를 지어 깨우치고자 하였는데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戒爾學立身, 莫若先孝悌.
계이학립신 막약선효제
네게 이르노니 입신하고자 배우는 것은 효제를 우선하는 것만 못하다.
怡怡奉親長, 不敢生驕易.
이이봉친장 불감생교이
기쁜 마음으로 부모와 연장자를 봉양하고 감히 교만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버려라.
戰戰復兢兢, 造次必於是.
전전복긍긍 조차필어시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급하고 힘들어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戒爾學干祿, 莫若勤道藝.
계이학간록 막약근도예
네게 경계하노니, 관직을 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인간의 도리와 예를 배우는 것보다 못하다.
嘗聞諸格言, 學而優則仕.
상문제격언 학이우즉사
일찍이 옛 격언을 들어보면, 배우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벼슬에 나선다 라고 하였다.
不患人不知, 惟患學不至.
불환인불지 유환학부지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다만 학문이 부족한 것을 걱정하여라.
戒爾遠恥辱, 恭則近乎禮.
계이원치욕 공즉근호례
네게 경계하노니, 치욕됨을 멀리하여라. 공손하면 예에 가깝고,
自卑而尊人, 先彼而後己.
자비이존인 선피이후기
스스로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며 상대를 우선하고 자신을 뒤에 놓아야 한다.
相鼠與茅鴟, 宜鑑詩人刺.
상서여모치 의감시인자
시경의 상서와 모치편에 시인이 풍자한 것을 보거라.
戒爾勿放曠, 放曠非端士.
계이물방광 방광비단사
네게 경계하노니, 방탕하고 분방하지 말아라. 방탕하고 분방한 것은 단아한 선비의 모습이 아니다.
周孔垂名敎, 齊梁尙淸議.
주공수명교 제량상청의
주공과 공자가 아름다운 교육을 남겼으니, 제와 양나라는 맑은 의기를 숭상하였지만
南朝稱八達, 千載穢靑史.
남조칭팔달 천재예청사
남조는 여덟 달인을 칭송하여 청사에 더러운 이름을 얻었다.
戒爾勿嗜酒, 狂藥非佳味.
계이물기주 광약비가미
네게 경계하노니, 술을 즐기지 말아라. 천성을 어지럽게 할 쁀 아름다운 맛이 아니다.
能移謹厚性, 化爲凶險類.
능이근후성 화위흉험류
술은 신중하고 중후한 성품을 흉악하고 음험한 무리로 바꾸니,
古今傾敗者, 歷歷皆可記.
고금경패자 역역개가기
고금에 술로 인해 집안이 기울고 패자가 된 사람을 하나씩 모두 기억할 수 있다.
戒爾勿多言, 多言衆所忌.
계이물다언 다언중소기
네계경계하노니, 말을 많이 하지 말아라. 말이 많으면 대중들이 싫어하고,
苟不愼樞機, 灾厄從此始.
구불신추기 재액종차시
진실로 추기를 조심하지 않으면 재난과 액운이 이것을 따라 시작된다.
是非毁譽間, 適足爲身累.
시비훼예간 적족위신루
옳고 그른 것과 헐뜯고 칭찬하는 사이에 다만 몸이 화를 당하기에 충분하다.
擧世重交游, 擬結金蘭契.
거세중교유 의결금란계
세상이 벗과 사귀는 것을 소중히 여기니 금란지계를 맺는 것처럼 하여라.
忿怨容易生, 風波當時起.
분원용이생 풍파당시기
만약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쉬이 일으키면 바람에 파도를 당장 일으키는 것과 같다.
所以君子心, 汪汪淡如水.
소이군자심 왕왕담여수
그러므로 군자는 마음을 깊고 넓은 물처럼 담담하게 가져야 한다.
擧世好承奉, 昻昻增意氣.
거세호승봉 앙앙증의기
세상이 떠받들어 주는 것을 좋아해 으스대며 의기를 높게 가지려 한다.
不知承奉者, 以爾爲玩戱.
불지승봉자 이이위완희
그러나 떠받드는 사람이 자기룰 놀림으로 희롱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所以古人疾, 蘧篨與戚施.
소이고인질 거저여척시
그래서 옛 사람들이 새가슴과 꼽추를 미워한 것이다.
擧世重游俠, 俗呼爲氣義.
거세중유협 욕호위기의
세상이 협객을 중히 여기고 세속에서 기개와 의리가 있다고 하지만
爲人赴急難, 往往陷囚繫.
위인부급난 왕왕함수계
다른 사람을 위해 급하고 어려운 일에 연루되어 가끔은 죄수가 되어서 잡혀 묶인다.
所以馬援書, 殷勤戒諸子.
소이마원서 은근계제자
그래서 마원이 글을 써서 여러 자제들을 경계한 것이다.
擧世賤淸素, 奉身好華侈.
거세천청소 봉신호화치
세상이 청렴하고 소박한 것을 비천하게 여겨 몸치장을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미기를 좋아한다.
肥馬衣輕裘, 揚揚過閭里.
비마의경구 양양과여리
살찐 말을 타고 가볍고 사치스런 외투를 입고 의기양양하며 마을을 지나간다.
雖得市童憐, 還爲識者鄙.
수득시동련 환위식자비
시중 잡배와 어린 아이들은 부러워 할 수 있지만 식자들은 비천하다고 생각한다.
我本羇旅臣, 遭逢堯舜理, 位重才不充.
아본기여신 조봉요순리 위중재불충
나는 본래 머물다 가는 나그네 신하일 뿐이다. 요순과 같은 임금을 만나 지위가 높고 중하지만 재주는 부족한 사람이다.
戚戚懷憂畏, 深淵與薄冰, 蹈之唯恐墜.
척척회우외 심연여박빙 도지유공추
항상 근심하며 두려운 마음을 품어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 오로지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爾曹當憫我, 勿使增罪戾.
이조당민아 물사증죄루
너희 무리들은 나를 불쌍히 여겨서 죄와 허물을 더 짓지 않도록 해다오.
閉門斂蹤跡, 縮首避名勢.
폐문렴종적 축수피명세
문을 잠그고 발걸음을 감추며 머리를 숙이고 명예와 권세를 피하도록 하여라.
勢位難久居, 畢竟何足恃.
세위난구거 필경하족시
권세와 지위는 오래 가지기 어려우니 끝내 어찌 믿을 만 하겠느냐?
物盛則必衰, 有隆還有替.
물성즉필쇠 유융환유체
만물은 성하면 반드시 쇠하고, 일어나면 다시 스러지게 된다.
速成不堅牢, 亟走多顚躓.
속성불견뢰 극주다전지
빨리 이루어지면 견고하지 못하고 빨리 달리면 넘어지는 일이 많다.
灼灼園中花, 早發還先萎.
작작원중화 조발환선위
활짝 핀 정원의 꽃은 빨리 피면 먼저 지지만
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
지지간반송 울울함만취
천천히 자라는 냇가의 소나무는 울창하게 이루어 늦도록 푸르다.
賦命有疾徐, 靑雲難力致.
부명유질서 청운난력치
부여받은 천명에는 빠르고 느림이 있으니 청운은 사람의 힘으로 이루기는 어렵다.
寄語謝諸郞, 躁進徒爲耳.
기어사제랑 조진도위이
말로 일러서 제군들의 부탁을 사양하노라. 조급히 진급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註1) 范(풀이름 범), 杲(밝을 고), 奏(아뢸 주), 秩(차례 질), 曉(새벽 효), 怡(기쁠 이), 兢(삼갈 긍), 鼠(쥐 서), 茅(띠 모), 鴟(올빼미 치), 鑑(거울 감), 曠(밝을 광), 垂(드리울 수), 穢(더러울 예), 嗜(즐길 기), 樞(지도리 추), 灾(재앙 재), 厄(재앙 액), 毁(헐 훼), 譽(기릴 예), 累(여러 루), 擬(헤아릴 의), 汪(넓을 왕), 淡(물맑을 담), 昻(오를 앙), 蘧(패랭이꽃 거), 篨(대자리 저), 陷(빠질 함), 繫(맬 계), 裘(갖옷 구), 閭(문 려), 憐(불쌍히여길 련), 鄙(다라울 비), 羇(굴레 기), 遭(만날 조), 逢(맞이할 봉), 薄(엷을 박), 冰(얼음 빙), 蹈(밟을 도), 憫(근심할 민), 斂(거둘 렴), 蹤(발자취 종), 跡(발자취 적), 縮(오그라들 축), 避(피할 피), 畢(마칠 필), 恃(맏을 시), 驕易(교이-교만하여 남을 업신여김), 干祿(간록-관록을 구함), 放曠(방광-자유분방함)
(註2) 송사(宋史) 범질열전(范質列傳)에 나온다. 범노공은 북송의 유학자로 이름은 질(質), 자는 문소(文素)이며 송태조에 의해 노국공(魯國公)에 봉해졌다. 청담이란 후한때 당고의 화로 선비들이 많이 죽임을 당하자 지식인들이 세속에서 도피하여 예절과 속박에서 벗어나 정치와 인물 평론을 하던 류파의 청의(淸議)를 말한다. 범노공으로 불리는 범질은 당(唐)나라 말기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섰으며, 당나라가 망한 후, 오대십국 시대로 불리는 난세에서 후당, 후진, 후한, 후주의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벼슬을 하였다. 후주의 이대 군주인 세종은 명군으로 불리는데 세종이 급사하자 일곱 살의 어린 공제가 황위에 올랐고 범질은 재상으로 보좌하고 있었다. 요나라 토벌군 사령관이던 조광윤이 휘하 군인들에게 추대되는 진교의 변이 일어나 개봉으로 회군하자 후주의 재상 범질은 후일 송나라의 태조가 되는 조광윤과 협상을 하게 된다. 조광윤이 공제를 시해하지 않고 후주의 왕가를 보호한다는 약속을 받고 송나라의 개국을 도운 범질은 송태조에 의해 다시 송나라의 재상이 되어 봉사하였고 명재상으로 이름을 얻게 된다. 당시 수명 십오 년 정도의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벼슬하고, 후주와 송나라의 재상을 지낸 그는 학식과 문재가 뛰어났으나 스스로를 이 글에서 처럼 나그네 재상이라고 하였다. 중국역사는 송태조 조광윤가 잠을 자던 중 휘하군인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으며, 후주의 공제로 부터 평화로운 선양을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황제를 선양한 공제를 지방의 왕으로 분봉하고, 지방에서 요절하자 황제의 위의로 장례를 치루며 애통해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에 대한 안목과 기록 왜곡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나라 정사인 요사에서는 당시 후주 침략에 대한 군사동원 기록이 없으니 요나라 토벌군의 출정여부도 불투명하다. 황제에 조광윤이 추대된 후 수도 개봉으로 회군할 때 오히려 후주의 장군 한통이 조광윤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기록이 있으니, 조광윤이 기록한 추대와 선양은 맞지 않는 것이다. 실제 상황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공양왕을 겁박한 선위양식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범노공이 조광윤을 콘트롤 할 수 있는 재상의 지위에 있었지만 군사적 물리력을 가진 조광윤에게 맞서지 못한 것이다. 문사(文士)인 법노공은 공제를 겁박하는 조광윤 일파에게 공제의 안위를 보장받고 후주왕가의 후사를 잇도록 하는 협상을 하여 보장을 받았을 뿐이다. 조광윤은 황제가 된 후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볐고 자신을 추대한 장군들에게 군사권을 회수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 자신의 후사는 동생인 송태종 조광의에게 죽임을 당했다. 조선 초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연상되는 기록을 송사에서 보게되는 것이다. 이후 송을 개국한 송태조 조광윤은 지방군소 왕조들을 정벌하고 당나라 멸망 이후 사십오년 동안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통일왕조를 열었다. 조광윤은 전장에서도 수레에 책을 가득 싣고 다니면서 열독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공신들의 병권을 회수하고 사대부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그를 이은 송태종 역시 이런 문치위주의 정책을 시행하여 송나라는 군사력에서 중국의 역대 어떤 왕조보다도 약한 왕조가 되었다. 범노공이 자신의 조카인 고의 진급청탁을 거절하면서 훈계한 내용은 이러한 시대상황과 범질의 관료역정이 들어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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