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溫公曰 凡諸卑幼 事無大小여도 毋得專行하고 必咨稟於家長이니라
사마온공왈 범제비유 사무대소 무득전행 필자품어가장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길 '무릇 손아래 사람들은 일의 크고 작음이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말고 반드시 가장(家長)에게 여쭈어야 한다.'고 하였다.
(註) 毋(말 무), 專(오로지 전), 咨(물을 자), 稟(여쭐 품), 卑(낮을 비)
사마온공은 중국 북송대의 정치가인 사마광(司馬光)을 말한다. 사후 온국공(溫國公)에 봉해졌으므로 사마온공이라 부른다.
待客엔 不得不豊이요 治家엔 不得不儉이니라
대객 불득불풍 치가 불득불검
손님을 접대함에는 풍성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가정을 다스림에는 검소하지 않을 수 없다.
(註) 待(기다릴 대), 豊(풍년 풍)
太公曰 痴人은 畏婦하고 賢女는 敬夫니라
태공왈 치인 외부 현녀 경부
태공이 말하길 '어리석은 사람은 아내를 두려워하고, 어진 여자는 남편을 공경한다.'고 하였다.
凡使奴僕에 先念飢寒이니라
범사노복 선념기한
무릇 노복을 부림에는 먼저 배고픔과 추위를 생각하라.
(註) 僕(종 복), 飢(주릴 기), 念(생각할 념)
子孝雙親樂이요 家和萬事成이니라
자효쌍친락 가화만사성
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註) 雙(둘 쌍)
時時防火發하고 夜夜備賊來니라
시시방화발 야야비적래
때때로 불이 나는 것을 막고, 밤마다 도적이 오는 것을 방비하라.
景行錄云 觀朝夕之早晏하여 可以卜人家之興替니라
경행록운 관조석지조안 가이복인가지흥체
경행록에 이르되 '아침 저녁의 이르고 늦음을 보아, 그 사람의 집이 흥하고 쇠함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註) 備(갖출 비), 賊(도둑 적), 晏(늦을 안), 替(바꿀 체)
부지런한 가풍을 가진 집안은 흥하는 집안이다.
文中子曰 婚娶而論財는 夷虜之道也니라
문중자왈 혼취이론재 이로지도야
문중자(文中子)가 말하기를 '혼인하고 처를 맞는데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도이다.'라고 하였다.
(註) 문중자는 수나라때의 유학자 왕통(王通)을 말한다. 수문제에게 태평십이책을 건의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자 강호에 은거하며 제자를 길렀다. 당나라 초기의 개국공신인 방현령, 두여회, 위징등을 제자로 길렀고 당나라의 유학의 학풍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문중자(文仲子)는 그의 사후 제자들이 그에게 지어서 올린 시호이다. 치가편은 가정을 다스리는 데 대한 좋은 문장을 싣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그의 성공은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정이 무너지고 영웅들의 사후가 비극적으로 정리되거나 소멸되는 것은 모두 가정에서 비롯된다. 수나라 문제는 삼세기 초반 남북조 시대 중국 대륙의 혼란을 수습하고 중국 통일왕조를 열었던 창업황제이다. 과거제를 실시하고 사회통합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리는 개혁을 실행하였으나 고구려 정벌의 실패와 가정의 혼란으로 수나라는 단명으로 끝났고 당나라의 개국과 융성기의 기초만을 제공하였다. 수문제는 자신의 딸과 외손자인 북주의 정제에게 압력을 가해 강제 선위를 받아 황제의 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처인 독고황후에게 엄한 제약을 받았고 태자를 폐하고 둘째 아들인 양광을 태자로 세우는 등 가정의 다스림에는 낙제점이었다. 결국 그는 고구려 정벌이 실패로 돌아가고 독고 황후의 죽음이후 방탕한 생활로 그의 아들 수양제에 의해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았다. 수문제와 수양제는 비록 천하를 가졌지만 이러한 그의 치가는 결국은 자신의 비참한 죽음과 왕조의 단명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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