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자왈 개유부지이작지자 아무시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지어내지만 나는 그러하지 않는다.
多聞, 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다문 택기선자이종지 다견이지지 지지차야
많이 듣고, 그 가운데 좋은 것을 선택하여 그것을 따르며, 많이 보고 그것을 아는 것은 지식에 버금가는 것이다.’고 하셨다.
(註1) 蓋(덮을 개), 擇(가릴 택), 次(버금 차)
(註2) 지금 사람들은 이치와 도리를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지어내고 편집하지만 공자는 그러하지 않았다 (시인개유부지리도, 천착망작편적자, 아즉무차사야 時人蓋有不知理道, 穿鑿妄作篇籍者, 我即無此事也). 많이 듣고 그 중에서 선한 것을 따르고 많이 보고 선한 것을 택하여야 한다 (인약다문, 택선이종지, 다견, 택선이지지, 능여차자, 비천생지지가이위차야 人若多聞, 擇善而從之. 多見, 擇善而誌之, 能如此者, 比天生知之可以為次也).
(註3) 궁극의 이치를 충분히 공부하여 깨닫지 아니하고 함부로 얘기하거나 지어내는 것을 사문이라고 하였다.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하고 노력하는 것은 이치와 사리에 맞게 하여햐 하는 것이다. 편협하고 옹졸한 생각으로 성현의 말씀을 사려깊게 연구해 보지 않고 피상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주견을 함부로 애기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님의 말씀 또한 늙은 말의 지혜와 같아서 깊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함에도 고루하다는 선입관으로 이를 경원시 하는 것도 또한 같은 것이다. 그 깊이를 헤아려 들을 줄 알아야 자신의 지식이 되는 것이다. 충분히 알고 깨닫지 아니하면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될 수 없다.
互鄕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호향난여언 동자현 문인혹
호향사람은 더불어 얘기하기 어려운데 호향의 어린애가 공자를 뵙자 문인들이 당혹해 하였다.
子曰, 與其進也, 不與其退也, 唯何甚?
자왈 여기진야 불여기퇴야 유하심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찾아왔으니 허락 하는 것이고, 물러나는 것을 허여하지 않는 것이 어찌 심하다 하겠는가?
人絜己以進, 與其絜也, 不保其往也.
인결기이진 여기결야 불보기왕야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찾아오면 그 깨끗함을 함께 하는 것이지, 그 지난 일까지 탓할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註1) 互(서로 호), 惑(미혹할 혹), 唯(오직 유), 甚(심할 심), 絜(깨끗할 결)
(註2) 여(與)는 허락의 의미이다 (허여야 許與也). 불보기왕(不保其往)은 지난 것을 담아두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보(保)는 보지(保持)하다는 뜻이다. 유하심(唯何甚)은 너무 심히 미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註3) 호향은 하남성 녹읍 또는 강소성 패현 부근의 지명이라고 한다. 패현은 송나라 지방의 고장인데 당시 풍습이 음란하고 예가 행하여 지지 않아 사람들이 꺼려하던 지방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꺼려하는 지방 출신의 소년이 배움을 청하는 것을 공자는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신의 교육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배움에 무슨 출신이나 지방색이 있겠는가? 참으로 타당한 공자의 교육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가 동, 서의 지역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천오백년 전의 공자시대 만도 못하지 않은가 반성해야 한다. 애향심이야 나무랄 일도 아니고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터무니 없는 지역감정이야 말로 망국의 협사에 불과하다.
'논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어 (論語) - 제7편 술이 (述而): 궁행군자 즉오미지유득 #17 (0) | 2022.08.15 |
---|---|
논어 (論語) - 제7편 술이 (述而): 아욕인 사인지의 #16 (0) | 2022.08.14 |
논어 (論語) - 제7편 술이 (述而): 무이위유 허이위영 #14 (0) | 2022.08.12 |
논어 (論語) - 제7편 술이 (述而): 오무행이불 여이삼자자 #13 (0) | 2022.08.11 |
논어 (論語) - 제7편 술이 (述而): 삼인행 필유아사언 #12 (0) | 2022.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