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論語) - 제7편 술이 (述而): 아욕인 사인지의 #16
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자왈 인원호재 아욕인 사인지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한다면 바로 인에 이르게 된다.’라고 하셨다.
(註1) 遠(멀 원), 欲(바랄 욕)
(註2) 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데 있다 (인도불원, 행지즉시, 고왈인도기원호재 仁道不遠, 行之即是, 故曰仁道豈遠乎哉). 내가 인을 행하고자 하면 인에 일게 되는 것이니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아욕행인, 즉사인지의, 시불원야 我欲行仁, 即斯仁至矣, 是不遠也).
(註3) 인(仁)이란 인간이 행하는 것이기에 사람(人)과 하늘과 땅을 가르키는 두(二)자의 합성어로 되어 있다. 동물이 제 새끼를 사랑하고 동족을 사랑하는 것이 어진 것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사람이 행하는 것이 인(仁)과는 구별된다. 사람은 효제와 인의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배우고 애써 실행하면 인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공자의 위대함은 그 실행을 강조하는 데 있다. 모든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 인은 어버이를 섬기는 공경의 마음과 형제와 우애할 수 있는 배려의 겸양에서 출발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지키고 실행할 수 있다면 인을 어찌 피상적이고 자신과는 상관 없는 멀리 있는 것이라 하겠는가? 인의를 알고 이를 실행하고자 하는 바램과 의지에서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인에 이르게 된다는 공자의 얘기는 얼핏 단순하고 쉬워보이지만 그것 보다 어려운 것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의 감정은 가끔 이성을 잃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해에 합치하지 않으면 인을 잊어버리게 된다.
陳司敗問, 昭公知禮乎, 孔子曰, 知禮.
진사패문 소공지례호 공자왈 지례
진나라의 사패가 소공이 예를 아는 사람인가를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예를 압니다.’라고 하셨다.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 曰, 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
공자퇴 읍무마기이진지 왈 오문군자불당 군자역당호
공자가 물러나가자, 무마기에게 읍을 하고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가 들은 바로는 군자는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 하는데, 군자 역시 파당을 짓습니까?
君取於吳爲同姓, 謂之吳孟子. 君而知禮, 孰不知禮?
군취어오위동성 위지오맹자 군이지례 숙부지례
군주께서는 오나라에서 동성의 부인을 맞았고 이를 일러 오맹자라고 합니다. 군주께서 예를 안다면 그 누가 예를 모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巫馬期以告. 子曰,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무마기이고 자왈 구야행 구유과 인필지지
무마기가 이를 공자에게 고하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구(공자)는 행복하도다. 내게 허물이 있다면 누군가 반드시 그것을 알려주는구나.’라고 하셨다.
(註1) 昭(밝을 소), 揖(읍 읍), 巫(무당 무), 孰(누구 숙), 期(기약할 기), 苟(진실로 구)
(註2) 진사패는 진나라 사구의 관직을 말한다 (진대부위사구지관 陳大夫為司寇之官).
(註3) 진나라 사구(司寇), 현재의 검찰총장인 진사패가 노소공이 오나라 출신의 왕비를 맞았는데 오나라와 노나라는 주왕실에서 갈라진 같은 희성(姬姓)의 동성이니 예에 벗어난 것이 아니냐고 물은 것이다. 무마기는 공자의 젊은 제자로 무마(巫馬)는 성이고 이름은 시(施), 자는 자기(子期)이다. 오맹자는 노나라 소공의 부인이다. 임금의 부인은 출신국가명에 자신의 성을 붙여 쓰는 것이 당시의 예법이었다. 왕비의 성이 희씨(姬氏)였으므로 오희(吳姬)라고 불려야 하지만 노소공 역시 희씨로 동성이었기 때문에 오맹자(吳孟子)로 바꾸어 부른 것이다. 여기서 맹자는 맏딸이라는 뜻인데, 소공의 부인은 아마도 맏딸이었던 모양이다. 오나라는 천자인 주나라의 선조인 태왕(太王)의 아들 태백(太伯)이 세운 나라이니 희씨성이고, 노나라 역시 주문왕의 아들인 주공 단의 나라이니 둘 다 주왕실에서 갈라져 나온 동성이다. 진사패는 그렇게 예를 숭상하는 노나라 군주가 예를 모른다고 비판한 것이다. 자기 나라의 군주의 허물을 얘기할 수 없었던 공자는 처음에는 자신의 군주가 예를 안다고 옹호하다가 진사패가 이를 비판하자 쿨하게 이를 인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