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論語) - 제5편 공야장(公冶長): 불여야 오여녀불여야 #6
子謂子貢曰, 女與回也孰愈?
자위자공왈 녀여회야숙유
공자께서 자공에게 ‘너와 안회 중 누가 더 나으냐?’고 하자,
對曰, 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대왈 사야하감망회 회야문일이지십 사야문일이지이
자공이 대답하기를 ‘사가 감히 어찌 안회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사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라고 하자
子曰, 弗如也, 吾與女弗如也.
자왈 불여야 오여녀불여야
공자는 ‘나와 너는 같지 않구나.’라고 하셨다.
(註1) 貢(바칠 공), 孰(누구 숙), 愈(더욱 유), 敢(감히 감), 弗(아닐 불)
(註2) 유(愈)는 유승야(猶勝也)이고 망(望)은 위비시(謂比視)로 해석한다. 안회는 아성으로 불리고 처음과 끝을 알았으나 자공은 식견이 얕았다 (안회아성, 고문시지종, 자공식천 顏回亞聖, 故聞始知終, 子貢識淺). 불(弗)은 깊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데 (부지심야 不之深也), 자공이 공자의 답을 알지 못하고 참괴할 것을 염려하여 공자가 반복해서 말한 것이다 (기연답자공불여, 우공자공참괴, 고복운오여여구불여, 욕이안위자공지심, 사무참야 既然答子貢不如, 又恐子貢慚愧, 故複云吾與女俱不如, 欲以安慰子貢之心, 使無慚也). 사는 자공의 이름이고 회는 안회를 말하는 데 자 대신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주 돈독한 친밀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註3)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배움을 좋아하고 이를 실행하고자 한 제자로 공자는 안회를 여러 번 애기하고 있다. 공자의 주유열국에서도 공자를 성실히 수행하였고 학문수행능력이 뛰어나 공자의 많은 제자중 항상 첫 손가락에 꼽히는 제자로 알려져 있다. 공자 말년에 안회가 죽었을 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다고 울부짖으며 애곡하였다. 공자는 안회를 자신의 후계자 또는 자신 사후 공자의 학단 전체를 이끌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공 또한 공자의 가장 중요한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출중한 상업능력으로 큰 부를 축적하고 공자학단의 재정적 지원을 하였던 제자가 자공이다. 공자가 죽을 때 사야 왜 이리 늦었느냐고 찾았던 제자도 자공이었고, 염구가 계강자의 가재가 되자 스승인 공자를 귀국시키도록 요청한 사람도 자공이다. 자공은 또 공자 사후 다른 제자들이 삼년상을 치르고 떠난 후에도 홀로 삼년상을 더 치렀던 제자이다. 학문이 안회보다 못하다는 것은 자공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루공의 부를 쌓은 자신의 능력도 안회 못지 않다고 항변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학자들의 해석대로 자공의 참람한 마음을 억제하기 위해 공자가 반복하여 안회의 뛰어남을 강조한 것인지는 역시 모를 일이다. 다만 자공은 공자류파의 번영과 초기의 발전에 재력을 뒷바침하여 크게 기여하였음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아무리 천금의 재물을 가진들 그것을 학파류의 발전에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리고 삼년상을 복상한다는 것도 웬간한 독한 마음과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재학겸비(財學兼備)라고 자공에 대해 평가할 만하지 않은가? 안회의 학문적 성과는 요절한 그의 운명만큼이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요절하였다고는 하나 안회는 공자류파에서 아성(亞聖)급으로 존숭되고 있다. 안회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 스승인 공자도 인정할 정도였으니 스승을 존경하는 자공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겸손한 자공의 빛이 바래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