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論語) - 태사공 사마천의 공자세가(孔子世家), #15
秋, 季桓子病, 輦而見魯城, 喟然歎曰,
추 계환자병 연이견노성 위연탄왈
가을 계환자가 병이 들자 수레를 타고 노성을 둘러보며 한탄하여
昔此國幾興矣, 以吾獲罪於孔子, 故不興也.
석차국기흥의 이오획죄어공자 고불흥야
'옛날 나라가 흥성할 기회가 있었건만 내가 공자에게 죄를 얻어 나라가 흥하지 못했구나.'라고 말했다.
顧謂其嗣康子曰, 我即死, 若必相魯. 相魯, 必召仲尼. 後數日, 桓子卒.
고위기사강자왈 아즉사 약필상노 상노 필소중니 후수일 환자졸
그의 후계자인 강자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으면 필히 재상으로 주군을 돕고, 반드시 중니를 불러라.' 말하고 며칠 뒤 환자가 죽었다.
康子代立. 已葬, 欲召仲尼.
강자대립 이장 욕소중니
강자가 그 자리를 잇고, 장례를 치른 후 중니를 부르려고 하였다.
公之魚曰, 昔吾先君用之不終, 終為諸侯笑. 今又用之, 不能終, 是再為諸侯笑.
공지어왈 석오선군용지불종 종위제후소 금우용지 불능조 시재위제후소
공지어가 말하길 '예전에 선군이 공자를 등용하였으나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고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그를 등용하시면 끝까지 함께하지 못할 것이고 이 역시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라고 하였다.
康子曰, 則誰召而可? 曰, 必召冉求.
강자왈 즉수소이가 왈 필소염구
강자가 '그러면 누구를 부르는게 옳겠소?'라고 하자, '반드시 염구를 부르소서.'라고 하였다.
於是使使召冉求. 冉求將行, 孔子曰, 魯人召求, 非小用之, 將大用之也.
어시사사소염구 염구장행 공자왈 노인소구 비소용지 장대용지야
이에 사람을 보내 염구를 불렀다. 염구가 떠나려 하자 공자가 ‘노대부가 너를 구하니 작게 쓰려는 것이 아니라 장차 크게 쓰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是日, 孔子曰, 歸乎歸乎!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吾不知所以裁之.
시일 공자왈 귀호귀호 오당지소자광간 비연성장 오부지소이재지
떠나는 날 공자가 '돌아가자, 돌아가! 내 고향 젊은이들은 뜻이 커도 소홀한 것이 있으니, 문장은 아름답고 화려하다. 내가 그들을 가다듬어야 할지 모르겠구나.’라고 말했다.
子贛知孔子思歸, 送冉求, 因誡曰, 即用, 以孔子為招 云.
자공지공자사귀 송염구 인계왈 즉용 이공자위초 운
자강이 공자가 돌아갈 뜻이 있음을 알고 염구를 전송하면서 부탁하여 말하기를 '등용되시면 공자를 초빙하세요.'라고 하였다는 말이 있다.
(註) ① 자강은 자공의 다른 이름이다.
冉求既去, 明年, 孔子自陳遷于蔡.
염구기거 명년 공자자진천우채
염구가 돌아가고 그 다음해 공자는 진나라를 떠나 채나라로 옮겨갔다.
蔡昭公將如吳, 吳召之也.
채소공장여오 오소지야
채소공은 오왕이 불러 오나라로 가려던 참이었다.
前昭公欺其臣遷州來, 後將往, 大夫懼復遷,
전소공기기신천주래 후장왕 대부구복천
전에 소공을 그 신하들을 속이고 주래로 천도하였는데 다시 가는 것을 대부들은 다시 천도하려는 것으로 의심하였다.
公孫翩射殺昭公. 楚侵蔡.
공손편사살소공 초침채
공손편이 소공을 활로 쏘아 죽이자 초나라가 채나라를 침략하였다.
秋, 齊景公卒.
추 제경공졸
가을에 제경공이 죽었다.
明年, 孔子自蔡如葉.
명년 공자자채여섭
다음 해 공자는 채에서 섭으로 갔다.
葉公問政, 孔子曰, 政在來遠附邇.
섭공문정 공자왈 정재래원부이
섭공이 정사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길 '정치는 먼 곳에 사람을 찾아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他日, 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타일 섭공문공자어자로 자로불대
다른 날 섭공이 공자에 대해 자로에게 물었으나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孔子聞之, 曰, 由, 爾何不對曰, 其為人也, 學道不倦, 誨人不厭,
공자문지 왈 유 이하불대왈 기위인야 학도불권 회인불염
공자가 그것을 듣고서 '유야 너 어찌 선생님의 위인됨은 도를 배우는데 게으르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云爾.
발분망식 낙이망우 불여노지장지 운이
열중하면 밥먹는 것을 잊고, 음악으로 근심을 잊고, 장차 늙어가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라고 답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註) ① 섭공은 심제량으로 초나라 대부이며, 오초대전에서 오자서와 싸웠던 사마 심윤술의 아들이다. 초나라의 변경인 섭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초나라는 주나라가 봉한 제후국 중에서 가장 급이 낮은 제후로 왕실과 친척관계나 삼왕의 후손이 아니었다. 주무왕의 은나라 주왕 주벌시 병력 참여의 공으로 초나라 제후에 봉해졌으나 점차 세력을 키워 왕호을 참칭하였다. 심제량 또한 섭공으로 공호를 쓸 수 없었지만 공호를 참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