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 권학편(勤學篇)
子夏曰 博學而篤志하고 切問而近思면 仁在其中矣라
자하왈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자하가 말하기를 '널리 배워서 뜻을 굳게 하고,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에서 생각하며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註) 博(넓을 박), 篤(도타울 독), 篤志(독지-변함없는 의지)
자하는 공자의 제자 복상(卜商)의 자이다. 공자의 제자중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이고 공자 사후에 위문후(魏文侯)에게 등용되어 일했다. 문후가 위나라를 개국하면서 진(晉)나라가 위,한,조나라로 삼분되었고 이때부터 전국시대라고 한다.
莊子曰 人之不學은 如登天而無術하고 學而智遠이면 如披祥雲而覩靑天하고 登高山而望四海니라
장자왈 인지불학 여등천이무술 학이지원 여피상운이도청천 등고산이망사해
장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하늘에 오르려 하나 재주가 없는 것과 같고, 배워서 지혜가 원대해지면 상서(祥瑞)로운 구름을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며 산에 올라 사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註) 術(재주 술), 披(해칠 피), 祥(상서로울 상), 覩(볼 도)
장자는 노자를 계승한 도가의 사상가로 맹자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지방의 하급관리로 살았으나 ‘장자‘를 저술하였다.
장자는 노자와 함께 노-장 사상의 원류로 도가의 법통을 이었다.
禮記曰 玉不琢이면 不成器하고 人不學이면 不知道라
예기왈 옥불탁 불성기 인불학 부지도
예기(禮記)에서 이르길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의(道義)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註) 琢(쫄 탁), 禮(예절 례), 器(그릇 기)
예기는 유가의 다섯 경전 중 하나로 의례에 대한 해설 및 정치, 음악, 문학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주나라 때의 주례와 의례를 예경이라 하고, 한나라 무제 때 하간과 선제 때의 유향이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예기' 이백 편 중에서 편찬하여 정리하였다. 이후 대덕이 그 중에서 85편 대성이 49편을 골라서 편찬하였는데 대덕이 편찬한 일부와 대성이 편찬한 예기가 전해지고 있어 이를 예기라고 한다. 예기는 의례와 이론 및 실제를 논하는 내용으로 대학과 중용도 이것 중의 한편이다.
太公曰 人生不學이면 冥冥如夜行이니라
태공왈 인생불학 명명여야행
태공이 말하기를 '사람이 살면서 배우지 않으면 어둡고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라.'고 하였다.
(註) 冥(어두울 명)
韓文公曰 人不通古今이면 馬牛而襟裾니라
한문공왈 인불통고금 마우이금거
한문공이 말하길 '사람이 옛 것과 현재의 것에 통달하지 않으면 말과 소에 옷을 입힌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註) 今(이제 금), 襟(옷깃 금), 裾(자락 거), 馬牛襟裾(마우금거)
한문공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명인 송나라의 한유(韓愈)를 말한다. 시호가 문(文)이며 송나라 이후 한국과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성리학의 원조로 불린다.
朱文公曰 家若貧이라도 不可因貧而廢學이요 家若富라도 不可恃富而怠學이니
주문공왈 가약빈 불가인빈이폐학 가약부 불가시부이태학
주문공이 말하길 ‘만약 집이 가난해도 가난 때문에 배움을 폐하지 말고, 집이 부유해도 부유한 것을 믿고 학문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註) 恃(믿을 시), 不可(불가-~할 수 없다)
貧若勤學이면 可以立身이요 富若勤學이면 名乃光榮이니라
빈약근학 가이입신 부약근학 명내광영
가난한 자가 만약 부지런히 배운다면 입신(立身, 입신양명立身揚名, 즉, 출세를 의미한다)할 수 있으며, 부유한 자가 만약 부지런히 배운다면 이름이 더욱 빛날 것이다.
(註) 可以(가이-~할 수 있다),
惟見學者顯達이요 不見學者無成이니라
유견학자현달 불견학자무성
오로지 배운 사람이 현달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배운 사람으로써 성취하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註) 惟見-/不見-(유견-불견-~하는 것은 보았지만,~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學者는 乃身之寶요 學者는 乃世之珍이니라
학자 내신지보 학자 내세지진
배움이란 곧 몸의 보배요, 배움은 곧 세상의 보배이다.
(註) 珍(보배 진), 寶(보배 보)
是故로 學則乃爲君子요 不學則爲小人이니 後之學者는 宜各勉之니라
시고 학즉내위군자 불학즉위소인 후지학자 의각면지
이 때문에 배우면 군자(君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小人)이 될 것이니, 후세에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힘써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註) 勉(힘쓸 면)
주문공은 남송의 주희(朱熹), 주자(朱子)로 불리며 시호가 문(文)이다. 주희는 동양의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주희 이전의 오경을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체제로 정리, 편찬하여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는 사서를 중심으로 과거제를 운영하였다. 친구인 여조겸과 근사록을 저술하였고, 조선의 유학을 비롯한 이후의 동양 성리학은 모두 주자의 학설을 중심으로 체계화되고 발전되었다. 주자는 송나라가 금나라의 힘에 밀려 남으로 내려와 송왕조의 쇠락을 비분강개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徽宗皇帝曰 學者는 如禾如稻하고 不學者는 如蒿如草로다
휘종황제왈 학자 여화여도 불학자 여호여초
휘종황제(徽宗皇帝)가 말하기를 '배운 사람은 낟알 같고 벼 같지만, 배우지 않은 사람은 쑥 같고 풀 같다.
(註) 徽(아름다울 휘), 稻(벼 도), 蒿(쑥 호)
如禾如稻兮여 國之精糧이요 世之大寶로다
여화여도혜 국지정량 세지대보
아아, 낟알 같고 벼 같음이여! 나라의 좋은 양식이요, 온 세상의 보배로다.
(註) 精(정할 정,깨끗할 정), 糧(량식 량)
如蒿如草兮여 耕者憎嫌하고 鋤者煩惱니라 他日面墻에 悔之已老로다
여호여초혜 경자증혐 서자번뇌 타일면장 회지이로
쑥 같거나 풀 같음이여 밭을 가는 자가 미워하고 밭을 매는 자가 괴롭고 귀찮아 한다. 다른 날 담장에 얼굴을 대한 듯 식견이 좁을 때 후회하고 뉘우친들 이미 늙었도다.'라고 하였다.
(註) 嫌(싫어할 혐), 鋤(호미 서,김맬 서), 煩(괴로워할 번,번거로울 번), 惱(괴로워할 뇌), 墻(담 장), 面墻(면장-담을 보고 서다, 무식함)
휘종(徽宗)은 북송의 여덟 번째 황제이다. 융성한 문화시대를 열었으나 국방을 소홀히 하여 금나라의 침공을 받고 중국 최초로 황제로서 이민족의 포로가 되어 만주에서 병사하였다. 이를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라고 한다. 풍류천자로 불리던 휘종은 그의 아들 흠종과 함께 수도인 개봉이 함락당하고 자신은 금나라의 포로가 되어 금나라로 끌려갔다. 중국 역사상 황제가 포로가 된 유일한 경우이며 북송은 이로서 망하게 된다. 이후 북송을 탈출한 그의 아들 고종이 황제가 되어 남쪽 항조우에 송나라를 재건하였는데 이 때부터 남송이라고 불린다. 휘종은 서예와 회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인사의 실패와 국정의 문란 그리고 국방을 소홀히 하고 외교적 교섭과 금나라에 돈을 주고 평화를 구하는 정책을 쓰다가 나라 전체가 패망에 이르게 한 군주이다. 당시 북송은 요나라의 군사적 대립관계에 있었는데 연, 운주를 요나라에 빼았겼고 요나라에 각종 세페를 공납하고 있었다. 만주에 금나라가 새로이 부상하자 휘종은 금나라와 연합하여 요나라를 공격하여 실지회복을 꾀하여 일시 금나라의 도움으로 회복하였다. 그러나 금나라와 군사적으로 대립하면서 침략을 당해 멸망하게 된다. 휘종이 재위할 때 수호지의 배경이 되는 송강과 방랍의 난이 일어나 국가는 혼란하였고 백성들의 고초가 컸음에도 자신의 문화 취미생활에 국력을 소모하여 결국은 패망의 군주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알아야 면장을 한다’라는 말은 여기의 ‘타일면장(他日面墻)’에서 나온 말이다.
論語曰 學如不及이요 猶恐失之니라
논어왈 학여불급 유공실지
논어(論語)에서 이르기를 '배움은 다하지 못할 것처럼 하고, 이미 배운 것은 잃을까 두려워할지니라.'고 하였다.
(註) 猶(오히려 유), 恐(두려울 공)
공자가 한 말이다. 배움을 미치지 못하여 안타까워 하고 배운 것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권학편(勸學篇)은 권학(勸學) 또는 근학(勤學)으로 읽는다. 배우기를 권하는 것으로 또는 배움을 부지런히 하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는 배움을 독려하는 의미의 권학으로 하였다. 권학이 맞느냐 근학이 맞느냐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배움이란 현대의 개념으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공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널리 학문을 익히고 배우고 자기의 주견을 뚜렷이 할 수 있는 그러한 배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배움은 학교공부에서 끝날 것 같지만 죽을 때까지 끈임없이 배워야 한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배움을 찾는 것은 인간의 살아가는 이치를 구하고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배움을 잘못 이해하여 자신의 지식을 습득하여 곡학아세하는 데 몰두하거나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는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입신출세만을 도모하는 천박한 공명심으로 연결하기도 하지만,무릇 배움이란 자신의 올바른 처세와 인간다움이 선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와 국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이롭고 발전적으로 자신의 배움을 쓸 수 있어야 올바른 배움의 길을 완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배우지 아니하고는 이런 것들 중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