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 계선편(繼善篇) #1
子曰 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이니라
자왈 위선자 천보지이복 위불선자 천보지이화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길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써 갚아주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는다.’라고 하셨다.
(註) 善(착할 선), 報(갚을 보), 福(복 복), 禍(재앙 화)
명심보감이나 경전에서 子曰이라고 하는 것은 孔子曰의 줄임말이다. 다른 사람의 얘기는 曾子曰과 같이 말한 사람의 이름을 쓴다. 공자에 대해서만 선생님이 말씀하시되를 子曰이라고 하는 것은 공자가 한 얘기가 가장 많아서 글자수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不善者는 선하지 않은 일을 한 사람이긴 하지만 악한 사람으로 하였다.
漢昭烈이 將終에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한소열 장종 칙후주왈 물이선소이불위 물이악소이위지
한(漢)나라의 소열황제(昭烈皇帝)가 임종을 맞이하여 후주(後主)에게 조칙을 내려 말하기를 ‘작은 선이라고 해서 하지 않으면 안되고, 작은 악이라고 해도 하여서는 안되느니라.’고 경계하였다.
(註) 昭(밝을 소), 烈(세찰 열), 勅(조서 칙), 將(장수 장), 終(마칠 종)
한소열황제는 삼국시대의 촉한의 황제인 유비(劉備)를 말한다. 유비가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백제성에서 죽을 때 아들 유선을 불러 얘기한 말이다. 후주(後主)는 촉한의 유비를 선주(先主)라고 하는데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유선을 가르키는 말이다.
항우를 물리치고 통일제국을 건설한 유방의 한나라는 서기 8년에 외척인 왕망이 평제를 독살하고 신(新)나라를 열어 멸망하였다. 이때까지의 한나라를 전한(前漢)이라 한다. 이후 서기 22년 한나라 왕족인 유수가 각처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고 낙양에 도읍을 정해 한나라를 재건하고 황제에 올랐으니 그가 광무제이다. 이 때부터 한나라를 후한(後漢)이라 한다. 후한 말기에 황제의 권위가 떨어지고 내시들에 의해 국정이 어지러워지면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는등 다시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때 여러 과정을 거쳐 조조는 위나라를 세워 후한왕조를 무너뜨렸다. 이에 손권은 동오에서 오나라를 유비는 파촉에서 촉한나라를 세워 황제위에 올라 세나라가 서로 자웅을 겨루게 되었는데 이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한다. 한나라 황실의 후예로 촉한을 건국한 사람이 유비이고 유비의 시호가 소열(昭烈)황제이다. 유비는 관우.장비와 도원결의를 맺고 제갈량을 삼고초려하여 촉한을 세우고 조조의 위나라에 대항하였다. 유비는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강력한 위나라에 대항하였지만 오나라와 형주의 소유권 문제로 갈등관계에 있었다. 오나라가 형주를 공격하여 관우를 죽이고 다시 장비마져 죽게되자 유비는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패하고 백제성에서 죽게 된다.
장종(將終)은 "죽음을 맞이하여"라는 의미인데 군주나 성인의 죽음은 종(終), 일반사람은 졸(卒)로 쓰였다.
莊子曰 一日不念善이면 諸惡이 皆自起니라
장자왈 일일불념선 제악 개자기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하루라도 선(善)을 염원하지 않으면 모든 악(惡)이 저절로 일어난다.’고 하였다.
(註) 莊(장중할 장), 念(생각할 념), 諸(모두 제), 皆(다 개), 起(일어날 기)
선과 악은 정반대의 개념이다. 선이란 잠깐 생각날 때마다 행하는 그저 착한 일은 아니다. 편명(篇名)에서 계선(繼善)이라 하는 것처럼 항상 선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어지고 염원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념선"은 선을 염원하는 것이다. 思는 생각하는 것이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 부딪혀 그 대상을 생각하는 것이고 염원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선을 행하는 것은 타고난 천품도 있으려니와 항상 자신을 선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수련하고 마음을 정갈히 하여 염원하는 상태를 유지하는데서 나온다. 새로이 발굴된 범립본에서는 諸惡自皆起로 바꾸어 쓰여져 있다. 하지만 그 뜻은 다르지 않다.
장자는 노자를 잇는 도가사상가이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장자의 안위자연(安爲自然)은 그 맥에서 일맥상통하며, 장자의 사상은 소요유(逍遙遊)와 만물제동(萬物齊同)으로 함축된다. 소요유는 정신적 자유와 해방, 즉 세속의 모든 속박으로 부터 벗어난 편안한 자유를 말하고, 만물제동은 천지의 만물은 귀천이나 계급이 없다는 즉 본질은 모두 동등하다는 절대평등의 개념이다. 명심보감에서 장자가 말한 것을 장자의 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장자의 이러한 사상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太公曰 見善如渴하고 聞惡如聾하라 又曰 善事란 須貪하고 惡事란 莫樂하라
태공왈 견선여갈 문악여농 우왈 선사 수탐 악사 막락
태공(太公)이 말하길 ‘착한 일을 보거든 목마른 듯이 하며, 악한 말을 듣거든 귀머거리처럼 하라.’ 또 ‘착한 일이란 모름지기 탐내야 하며, 악한 일이란 즐기지 말라.’고 하였다.
(註) 渴(목마를 갈), 聞(들을 문), 聾(귀머거리 농), 須(모름지기 수), 貪(탐낼 탐), 莫(없을 막), 樂(풍류 락, 즐거울 락)
태공(太公)은 주나라 무왕을 도와 은나라 주왕을 멸하고 주왕조를 열었던 인물로 주왕조가 세워지자 주무왕에 의해 제나라의 후로 봉해진 인물이다. 원래 太公은 주문왕의 할아버지로 중국 서북지방의 호족이었다. 주문왕은 인재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위수강가에 낚시를 하던 강상(姜常)을 만나 책사로 등용하고 그의 딸을 무왕과 결혼시켜 사돈이 되었다. 문왕은 자신의 할아버지인 태공이 애타게 찾던 인재라고 하여 강상을 태공망(太公望)이라 하였는데 후세에는 강상이 태공으로 알려지고 현재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을 강태공이라고 한다.
복수불반(覆水不返)은 강태공이 병법을 연구하며 지내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그의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후일 강태공이 제나라의 제후가 되자 집을 나간 그의 아내가 다시 찾아와 사죄하자 태공이 그릇의 물을 땅에 쏟은 뒤 다시 담으면 당신과 살겠다고 하자 아내가 단념하며 울면서 따나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는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다.
주공은 병력이 약한 주나라의 군대로 은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은나라의 주왕은 달기라는 미색에 빠져 주지육림의 방탕과 포학한 정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에 재능이 뛰어나고 용감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사서에 나오는 ‘紂克東夷 而損其身’ 즉 동이를 정벌하다가 망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또한 백이, 숙제가 以臣伐君(신하가 임금을 정벌하는 것)은 불가하다 라고 간하다가 이루어지지 않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굶어 죽었다는 고사로 보아 주무왕과 강태공은 동이, 즉 조선을 정벌하던 은나라 주왕을 뒤에서 기습하여 패퇴시킨 것이 사실로 보인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의 기록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후 강태공은 병법의 대가로 알려져 왔고, 은나라 주왕은 망국의 왕으로 포학하고 방탕한 군주로 기록되어 왔다.